전경련, 7년째 여전한 부끄러운 주장들

전경련, 내수침체 탓 화평법 21년까지 유예 압박
환경부 장관 "맞춤형 규제완화 해 나갈 예정"발언
환경연합, 환경부 발표 화학물질 인허가 규제완화
유해화학물질 운반용기 안전기준 및 기준조차 없어
'인허가 패스트트랙' 품목 무려 159개서 338개로
추호용 기자
| 2020-06-12 07:30:58

[환경데일리 추호용 기자]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딱 맞다. 유해화학물질이 상시 공존하는 작업현장에서 언제 어떻게 누구를 향해 목숨을 빼앗는지 알수 없다. 늘 시한폭탄과 같다.


최근 현대오일뱅크 회장은 대산공장을 찾아 안전제일주의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현장관계자들에게 강조했다. 석유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곳은 언제나 불안감이 클 수 밖에 없다. 삼성 가스누출 사고 등 크고 작은 국내에서 일어난 유해화학물질 폭발이나 누출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도 기업들은 규제가 까다롭고 생산성을 떨어진다며 정부(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를 향해 규제완화에 집중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그러나 규제완화가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늘고 있다. 전경련 내부에서 오고간 대화중 "화학사고로 노동자나 주민은 죽을 수 있어도, 기업은 망하면 안 된다."는 얘기도 나왔다.

국내 기업의 헤드뱅크를 역할하는 전경련이 지금도 화학물질 안전망을 흔드는데 배후세력이 되고 있다.

지난달 조명래 환경부 장관의 간담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조 장관은 "산업계의 요구는 많지만 화평법, 화관법의 기반을 흔들 정도의 규제완화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라며 "다만(기업, 산업별) 맞춤형 규제완화는 해 나갈 예정이다."고 발언했다.


맞춤형으로 규제 완화한다고 못박았다. 환경부는 "인허가 패스트트랙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심사항목이나 대상은 일반절차와 동일하며, 화학사고 예방에 문제가 없도록 검토·관리하고 있다."고 입장을 내놓았다.

환경운동연합측은 환경부가 발표한 화학물질 인허가 규제완화로 가는 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재계의 요구사항이 하나씩 정책에 반영되고 있는 모양이다고 지적했다.

환경부는 선별해서 대응할 수 있다지만, 정말로 화학물질 안전망의 근간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환경운동연합측은 환경부는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규모나 현장 실정에 매우 섬세하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해화학물질 운반용기 안전기준 및 화학사고를 판단하는 기준조차 없다고 강조했다. 이런 주장에는 감사원이 발표한 보고서도 환경부와 상당히 배치된다. 즉, 환경부가 화학물질 안전망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고음이 거듭 울리고 있는 셈이다.


올 3월 전경련 내부에서 내수침체를 이유로 화평법을 2021년까지 유예를 달라고 환경부를 압박했다. 이와 달리, 경총은 신규화학물질 등록기준을 문제 삼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새로운 화학물질을 제조하거나, 수입하려는 기업은 시험자료를 제출해야한다.

그런데 연간 100kg라는 기준이 과하다는 것이다. 전경련도 동조했다. 신규물질 기준을 1톤 이상으로 완화하라는 요구였다. 기존화학물질의 등록기준도 언급했다. 이제는 유해·중점 화학물질만 등록하자는 말이었다.

이후 산업통상자원부는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수출 활력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유해화학물질 취급시설 인허가 패스트트랙 품목을 2배 이상 늘렸다. 무려 159개에서 338개로 증가했다. 마찬가지로 신규 화학물질 시험자료 제출생략 품목도 많아졌다.(159->338개로 확대) 지난해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해야 한다며, 화학물질 규제를 완화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이었다.

화학물질 안전망을 강화해야 할 이유들은 충분해보였다. 그런데도 재계의 주장이 정부정책에 반영되는 현실이 답답했다. 공허한 마음을 달래줄 책을 찾다가, '화학물질, 비밀은 위험하다'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2017년에 나온 이 책의 저자는 김신범 부소장이었다. 그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에서 화학물질과 씨름하는 활동가이자 연구자이다.

내용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책은 의외로 술술 넘어갔다. 수의학을 전공한 그가 대학원에 진학해 산업보건을 공부하기까지, 원진레이온을 통해 본격적으로 '산업재해'를 연구하기까지 젊은 시절 그가 겪었던 방황과 고민들도 담겨있었다. 발암물질을 감시하며 산업현장에서 싸워온 스토리도 흥미로웠다. 정신없이 그의 이야기에 빠지다 보니, 화평법 시행령을 논의하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화학물질 안전망 약화에도 앞장선 국정농단 세력들이 전경련 내부에 숨어있다.

"2013년에 화관법과 화평법을 도입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환영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기뻐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를 웃지 못하게 한 걸까? 다음 문단에서 그가 우려한 바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들이 들고 일어났다. 경제신문들 마다 사설로 두 법률을 공격했다. 화학물질관리법은 화학사고 발생 기업에 대한 과징금을 낮추라는 압력에 시달렸다. 심하게 말하면 화학사고로 노동자나 주민은 죽을 수 있어도, 기업은 망하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소름이 돋았다. 과거에도 화학물질 안전망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는 상상 이상이었던 것 같다.

"화평법은 더 큰 위기에 처했다. 가습기살균제 같은 사고를 예방하기는커녕, 오히려 (재계 입장에 따라 화학물질 안전망의 내용들이 후퇴함에 따라) 이 법 때문에 기업의 책임이 모호해져서 앞으로 더 큰 사고가 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생길 정도였다. 2011년 참사가 알려지고 2012년 불산누출 사고를 겪은 나라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이 모든 일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연결돼 있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했다. 화관법과 화평법이 기업을 못살게 구는 과잉규제라는 말이었다. 결국 대통령의 메시지는 시행령과 규칙을 제정할 때 기업의 요구를 대폭 수용하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새로 생긴 법률을 시행하기도 전에, 규제완화를 노골적으로 명령한 셈이다. 환경부장관은 즉각 반응했다. 전경련은 하위법령 제정방침에 대해 환영을 표했다."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하위법령을 제정한다는 환경부의 방침은 일단 환영할만하다. 그러나 시행령 개정만으로는 기업의 과도한 부담을 덜어주는데 한계가 있다."

그는 고용이 전경련 산업본부 규제개혁팀장이 작성한 글을 인용했다. 재계는 애초부터 큰 그림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시행령 하나에 그치지 않고, 화학물질 안전망 전체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었을까? 이런 상황을 지켜봐야하는, 저자의 심경을 듣고 있자니 한숨이 나왔다.


거침없이 규제완화를 외치던, 기업들의 적나라했던 모습들

그는 회의에 참석하면서 기업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들이었다. 그는 재계의 적나라한 요구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했다.

"지금까지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는데 갑자기 법을 지키라고 하면 기업은 어떻게 합니까?"
"제품을 만들 때 화학물질의 독성을 일일이 다 파악하라고 하면 제품 만들 수 없어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마세요. 해외기업에게 독성정보 달라 요청해봐야 살 테면 사고 말 테면 말라는 식의 반응입니다. 어쩔 수 없이 이렇게라도 사서 써야하는 기업의 고충을 알고 있나요?"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을 만들자고 말하는 격이었다. 법을 만드는 자리에서 말이다. 그의 지적이 아프게 다가왔다.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제품을 생산하면서 성분과 독성을 다 확인하지도 않고 만들고 있다니! 그게 내가 알았어야 하는 세상의 물정이었다. 회의를 통해 기업들은 원하던 것을 대부분 가져갔다. 우리는 너무 무력했다."

다시 규제완화를 외치는 재계, 기로에 선 화학물질 안전망

그의 경험은 무려 7년이 지난 일이었다. 그런데 2020년에도 재계의 행보는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규제완화의 목소리를 더욱 키우고 있다. 국민들을 경악하게 했던 화학물질 참사들의 여파는 잊혀져간다. 재계는 경제를 살려야한다며, 규제완화라는 익숙한 주장들을 다시 내놓는다. 생명과 안전이 우선인 나라로 가는 여정에서 큰 고비를 맞은 것 같다.

 

이번에는 화학물질 안전망을 지켜내고, 제2의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막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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