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반격”... 전 세계 미생물 95%, 플라스틱 분해 유전자 보유 확인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4-20 04:39:33

- 스페인 UAB 등 국제 공동연구진, 프로젝트 ‘마이크로월드(MicroWorld)’ 통해 입증
- 박테리아 및 고균의 ‘보편적 기능’ 발견... 62만 5천여 개의 분해 단백질 데이터베이스 구축
- 환경 조건에 따른 분해 효율 차이 규명, 향후 친환경 정화 기술의 새로운 지평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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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배출한 플라스틱 폐기물로 인해 지구 생태계가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연이 스스로 정화 능력을 키워왔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자치대학교(UAB)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최근 전 세계 미생물의 약 95% 이상이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미생물의 플라스틱 분해 능력이 특정 종에 국한된 희귀한 현상이 아니라, 자연계 전반에 걸친 보편적 현상임을 시사한다.

플라스틱 분해 유전자의 ‘보편성’ 발견
그동안 과학계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특정 박테리아(이데오넬라 사카이엔시스 등)의 존재에 주목해 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는 박테리아와 고균(Archaea)을 포함한 프로카리오트(단세포 원핵생물) 종의 95% 이상이 천연 또는 합성 폴리머를 분해할 수 있는 효소 유전자를 최소 하나 이상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며 기존의 상식을 뒤집었다.

연구팀은 국제 협력 프로젝트인 ‘마이크로월드(MicroWorld)’를 통해 무려 62만 5,000여 개의 미생물 분해 관련 단백질을 목록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 방대한 디지털 도서관에는 현대의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천연 섬유를 파괴하도록 설계된 효소 정보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이는 사실상 미생물계가 인류가 만들어낸 합성 물질에 대응하여 광범위한 유전적 무기고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환경 조건이 결정하는 ‘분해의 속도’
연구의 핵심 중 하나는 미생물의 분해 능력이 단순히 유전자의 유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기후와 토양 상태 등 미생물이 처한 ‘환경적 요인’이 분해 효율을 결정하는 결정적 변수임을 확인했다.

특정 생태계에서는 분해 효소의 농도가 유독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해당 지역의 환경 조건이 미생물의 ‘플라스틱 섭취’ 활동을 더욱 촉진했음을 나타낸다. 즉,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잠재력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실제 그 능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는 주변 환경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해양 및 토양 오염 문제 해결의 전략적 자산
현재 미세플라스틱과 나노플라스틱은 전 세계 바다와 토양을 막론하고 침투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생물의 보편적인 분해 능력은 환경 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평가받는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구축된 유전자 지도를 활용하면 어떤 미생물이 특정 폐기물을 처리하는 데 가장 적합하고 빠른지 식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단순히 자연의 정화 속도를 기다리는 것을 넘어, 인간이 특정 환경에 최적화된 미생물 정화 기술(Bioremediation)을 설계하고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미래 기술 및 지속 가능성으로의 연결
이번 발견은 향후 산업 및 환경 기술 분야에 다각도로 활용될 전망이다. 연구팀은 특정 환경에서 최적화되어 작동하는 효소를 선별하여, 이를 응용한 ‘고효율 플라스틱 분해 공정’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한, 미생물 효소에 의해 더 쉽게 분해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의 친환경 소재 설계에도 중요한 데이터가 될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은 “이번 결과는 자연 생태계가 이미 플라스틱 오염에 대응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며, “이제 남은 과제는 이 미시적인 조력자들의 능력을 어떻게 극대화하여 실제 오염 현장에 적용할 것인가에 있다”고 강조했다.

결론: 인간과 미생물의 ‘지속 가능한 공존’
미생물이 플라스틱을 분해한다는 사실이 보편적 지식으로 확립됨에 따라, 환경 보호를 위한 인류의 전략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차원을 넘어, 이미 배출된 쓰레기를 자연의 메커니즘을 통해 회복시키는 이른바 ‘자연 기반 솔루션(Nature-based Solutions)’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우리의 발밑과 바닷속에 존재하는 95%의 미시적 동반자들이 보여준 놀라운 적응력은, 인류가 직면한 환경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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