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의 침묵 깨고 나타난 심해의 전설, ‘포세이돈 오징어’ 신종 확인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4-06 02:44:58

- 런던 자연사박물관 수장고서 재발견… 스페인 연구진, 새로운 ‘과(科)’ 분류 체계 정립
- 향고래 위장에서 발견된 유일한 표본, 27년 만의 독보적 학술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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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마지막 미지의 영역, 심해(深海)의 신비가 70년 전 채집된 한 구의 표본을 통해 그 베일을 벗었다. 수십 년간 박물관 수장고에서 오동정(誤同定)된 채 잊혔던 해양 생명체가 현대 과학의 정밀 분석을 통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종이자, 새로운 ‘과(科)’의 주인공임이 밝혀져 학계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해양 생물학계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던 해양 생물 표본을 재조사하던 중, 지금까지 보고된 바 없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오징어를 발견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학명 '모비디키아 포세이도니(Mobydickia poseidonii)'로 명명된 이 심해 오징어는 약 70년 전 포경선에 의해 포획된 향고래의 위 속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이 표본은 기존의 흔한 종으로 오인되어 박물관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스페인 연구진이 최신 형태학적 분석 기법과 고도의 식별 기술을 동원해 해당 표본을 재검토한 결과, 기존의 그 어떤 두족류 분류 체계에도 부합하지 않는 독자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포세이돈 오징어’는 형태학적으로 매우 독특한 구조를 자랑한다. 연구진에 따르면, 이 오징어의 추정 몸길이는 약 40~50cm에 달한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흡반(빨판)에 달린 ‘삼지창 형태의 갈고리’다. 이는 그리스 신화 속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무기를 연상시키며, 학명에 ‘포세이돈’과 소설 속 거대 고래 ‘모비 딕’의 이름이 붙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 생명체는 안구를 제외한 신체 대부분이 색소가 거의 없는 **‘전무(全無)한 탈색 상태’**를 띠고 있다. 이는 빛이 거의 도달하지 않는 심해 환경에서 포식자의 눈을 피하기 위한 고도의 진화적 산물로 풀이된다. 이러한 특징들은 해당 종이 극심한 수압과 어둠이 지배하는 초심해층에 서식해 왔음을 시사한다.

과학계가 이번 발견에 특히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새로운 종(Species)을 하나 추가한 것을 넘어, 새로운 ‘과(Family)’ 단위를 신설해야 할 만큼 독보적인 형질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징어 분류 체계에서 새로운 과가 기술된 것은 지난 27년 동안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이는 현대 해양 생물학이 도달한 고도의 정밀성을 입증함과 동시에, 우리가 심해 생태계의 다양성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단 한 구의 불완전한 표본만으로도 기존 생물학적 계통도를 수정해야 할 만큼, 이 오징어는 진화론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포세이돈 오징어’는 ‘2025년 세계 10대 해양 신종’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이번 성과는 현장 탐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기존 자료의 재해석’임을 일깨워준다. 70년 전의 채집물이 현대의 과학 기술과 만나 새로운 지식으로 탈바꿈한 과정은 과학적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연구팀은 "이번 발견은 전 세계 박물관 수장고에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수많은 ‘숨겨진 생물 다양성’이 잠들어 있음을 의미한다"며, "박물관은 단순히 과거를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미래의 발견을 기다리는 거대한 지식의 저장고"라고 강조했다.

마그나피나(Magnapinnidae)와 같은 거대 오징어가 수미터에 달하는 촉수로 인류를 놀라게 했듯, 포세이돈 오징어의 발견은 심해가 여전히 인류에게 허락되지 않은 ‘지구상의 마지막 프런티어’임을 증명한다.

인류는 우주를 향해 눈을 돌리고 있지만, 정작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 내부 바다의 깊은 곳에는 아직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수많은 생명이 존재한다. 이번 포세이돈 오징어의 발견은 해양 탐사와 표본 보존에 대한 국가적·국제적 관심이 왜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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