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바꾼 지구의 ‘맥박’… 해수면 상승이 자전 속도마저 늦췄다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31 07: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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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의 영향이 이제 단순한 기상 이변과 생태계 파괴를 넘어, 지구라는 행성 본연의 물리적 운동 법칙까지 뒤흔들고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녹아내린 빙하가 지구의 자전 속도를 늦추고, 결과적으로 하루의 길이를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빙하의 해체와 지구의 ‘피겨 스케이팅’ 효과
최근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와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교(ETH Zurich)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기후 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이 지구의 자전 주기(LOD, Length of Day)를 미세하게 연장시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현상의 핵심 원리는 물리계의 ‘각운동량 보존 법칙’으로 설명된다. 극지방에 집중되어 있던 거대한 빙하가 녹아 바다로 흘러들면, 이 질량은 원심력에 의해 지구의 적도 부근으로 재배치된다. 연구팀의 모스타파 키아니 샤반디(Mostafa Kiani Shahvandi) 박사는 이를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회전 중에 팔을 옆으로 길게 뻗으면 회전 속도가 느려지는 원리와 같다”고 비유했다. 지구의 질량이 회전축에서 멀어지면서 관성 모멘트가 커지고, 결과적으로 자전 속도가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360만 년의 기록을 깨뜨린 인류의 흔적
연구팀은 이번 조사를 위해 심해저에 퇴적된 ‘벤토닉 포라미니페라(Benthonic Foraminifera, 저서성 유공충)’ 화석의 화학적 신호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지난 360만 년 동안의 해수면 변화를 복원하고 이를 현재의 자전 주기 변화와 비교했다.
분석 결과, 20세기 동안 기후 요인으로 인한 하루 길이의 증가 폭은 세기당 약 0.3~1.0밀리초(ms) 수준이었으나, 2000년 이후에는 세기당 1.33밀리초로 급격히 가속화되었다. 연구팀은 이러한 변화 속도가 플라이오세(Pliocene) 후기 이후 약 360만 년 동안 전례가 없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만약 현재의 고탄소 배출 시나리오가 지속될 경우, 2100년경에는 그 영향력이 세기당 2.62밀리초까지 확대되어, 수십억 년간 지구 자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쳐온 달의 기조력(tide force)을 압도하게 될 전망이다.
미세한 ‘밀리초’의 차이가 가져올 기술적 파장
일반 대중이 하루에 1,000분의 1초가 늘어나는 것을 체감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초정밀 시각 동기화가 필수적인 현대 기술 사회에서 이 미세한 오차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세계 표준시(UTC)는 지구의 실제 자전 주기와 원자시계를 맞추기 위해 ‘윤초(Leap Second)’를 도입해왔다. 최근 학계에서는 지구 내부의 동역학적 변화로 인해 사상 처음으로 1초를 빼는 ‘음의 윤초’ 도입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했으나, 역설적으로 가속화된 빙하 소실이 지구 자전을 늦추면서 이 도입 시기를 늦추는 결과를 낳고 있다. 즉, 인류가 초래한 환경 파괴가 역설적으로 정밀 공학계에 ‘시간적 여유’를 벌어다 주는 기괴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결코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위성 항법 시스템(GPS), 금융 거래 네트워크, 우주 탐사선 관제 등 극도의 정밀도를 요구하는 분야에서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자전 주기 변화를 실시간으로 보정해야 하는 추가적인 기술적 부담을 안게 되었다.
행성 전체를 뒤흔드는 인류세(Anthropocene)의 경고
이번 연구의 공동 저자인 베네딕트 소야(Benedikt Soja) 교수는 “자전 주기의 급격한 증가는 현대 기후 변화의 속도가 지질학적 역사 속에서 얼마나 이례적인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라며, 이 모든 현상의 주된 원인이 인간 활동에 있음을 명확히 했다.
지구는 수십억 년간 안정적인 리듬으로 회전해 왔다. 그러나 불과 한 세기 남짓한 기간 동안 인류는 대기의 성분을 바꾸고, 거대한 얼음 대륙을 녹였으며, 이제는 행성 전체의 회전 속도마저 변동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견이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지구의 ‘틱택(Tic-tac)’ 소리가 느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가장 거대하고도 정교한 경고 신호이기 때문이다. 해수면 상승이 가져올 해안 도시의 침수와 생태계 붕괴라는 직접적인 재앙 너머, 행성의 물리적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는 이번 보고서는 기후 위기 대응의 시급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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