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냐나의 반전… 육식동물이 소나무프로세쇼나리 나방을 사냥한다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18 03: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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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연안 소나무 숲의 골칫거리인 '소나무프로세쇼나리(Thaumetopoea pityocampa)' 나방을 억제할 뜻밖의 구원군이 등장했다. 그동안 조류나 특정 곤충만이 이들의 천적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스페인의 야생 육식동물들이 성체 나방을 포식한다는 사실이 세계 최초로 확인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스페인 도냐나 생물학 연구소(EBD-CSIC)와 우엘바 대학교 공동 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에코스피어(Ecosphere)'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여우와 바위담비 등 중형 육식 포유류가 소나무프로세쇼나리 성체 나방을 섭식한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이 해충은 알, 애벌레, 번데기 단계에서 다양한 상위 포식자에게 노출된다는 연구가 있었으나, 비행 능력을 갖춘 성체 나방이 지상 기반의 육식동물에게 대량으로 포식된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팀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카소를라·세구라·라스 비야스 자연공원, 시에라 네바다 국립공원, 아라세나 자연공원 등 스페인 전역의 주요 보호구역에서 육식동물의 분변 샘플을 수집해 정밀 분석했다.
분석 결과, 여우(Fox)와 바위담비(Stone Marten)의 배설물에서 상당량의 나방 알과 암컷 나방이 산란 시 알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특유의 비늘(scales)이 발견되었다.
여우의 분변: 샘플 하나당 평균 약 1,700개의 알 검출
바위담비의 분변: 샘플 하나당 평균 약 700개의 알 검출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육식동물들이 알을 품고 있는 암컷 성체 나방을 통째로 잡아먹었음을 확인했다. 반면, 긴꼬리고양이(Genet)나 오소리의 경우 이번 조사에서는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으나, 잠재적인 포식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다.
하늘을 나는 나방이 어떻게 땅 위의 포식자에게 잡혔을까? 연구 책임자인 자신토 로만(Jacinto Román) 박사는 암컷 나방의 독특한 행동 습성에서 답을 찾았다.
"교미를 마친 암컷 나방은 이동성이 제한되며, 때때로 알을 낳기 적합한 장소를 찾아 숲 바닥을 기어 다니는 행동을 보인다"며 "이 짧은 순간이 지상의 기회주의적 포식자들에게는 손쉬운 사냥의 기회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발견은 단순한 생물학적 관찰을 넘어 실질적인 산림 관리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소나무프로세쇼나리는 소나무와 삼나무의 잎을 갉아먹어 산림을 황폐화할 뿐만 아니라, 애벌레의 독성 털이 인간과 반려동물에게 심각한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보건 위생상의 문제도 안고 있다.
암컷 나방 한 마리는 보통 약 200개의 알을 체내에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육식동물이 성체 한 마리를 포식하는 것은 차세대 애벌레 수백 마리를 사전에 제거하는 '천연 방제' 효과를 낸다.
이번 연구는 생태계 내 포식자들의 다양성이 해충 조절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연구진은 "일반적인 육식동물이 특정 해충의 개체수 조절에 기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만큼, 이들 포식자의 서식지를 보호하는 것이 건강한 산림 생태계를 유지하는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도냐나의 과학자들은 앞으로 이러한 포식 행위가 실제 해충 발생 주기와 어느 정도의 상관관계를 갖는지, 그리고 기후 변화가 이러한 생태적 상호작용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후속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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