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라진 북서부 스페인의 비명: 칸타브리아·아스투리아스 산불 대란과 구조적 위기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02 14:5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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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말, 스페인 북서부 칸타브리아(Cantabria)와 아스투리아스(Asturias) 지역이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다. 불과 24시간 만에 60곳 이상의 발화점이 확인되면서, '겨울 산불'이라는 생소한 단어는 이제 이 지역의 일상적인 위협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상 이변을 넘어, 스페인 사회가 오랫동안 방치해온 농촌 공동화와 관리 부재라는 구조적 결함이 기후 위기와 맞물려 폭발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통적으로 스페인 북서부의 겨울은 습하고 서늘하여 산불로부터 안전한 시기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지난 2월 27일을 기점으로 발생한 이번 산불은 이러한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이상 고온 현상과 함께 남쪽에서 불어오는 건조한 강풍(남풍), 그리고 극도로 낮은 습도가 결합하면서 산은 거대한 화약고로 변했다.

현지 소방 당국에 따르면, 동시다발적인 발화는 진압 자원을 분산시켜 대응 능력을 마비시켰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산불의 달력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경고한다. 과거 여름철에 집중되던 산불이 이제는 연중무휴의 위협이 되었으며, 이는 기후 변화가 가져온 '뉴 노멀(New Normal)'의 서막이라는 분석이다.


이번 산불 대란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상 조건에만 있지 않다. 전문가들은 수십 년간 지속된 '농촌의 소멸(España Vaciada)'을 주범으로 지목한다.

가축 사육 및 경작의 중단: 과거에는 방목하는 가축들이 풀과 저지목을 뜯어 먹어 자연스럽게 '연료량'을 조절했다. 그러나 농촌 인구 감소로 축산업이 쇠퇴하면서 산자락에는 마른 풀과 관목이 무성하게 쌓여 산불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적 모자이크 경관의 파괴: 농경지, 목초지, 산림이 섞여 있어 천연 방화벽 역할을 하던 '모자이크형' 토지 이용이 사라졌다. 관리되지 않은 단일 수종의 산림이 광범위하게 연결되면서 한 번 시작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구조가 되었다.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의 부재: 스페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소방 기술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는 사후 처방에 불과하다. 숲 가꾸기 등 예방 중심의 예산 편성이 미비하다는 점이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증명되었다.

안타깝게도 이번 산불의 상당수는 인간의 개입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북서부 지역에서는 목초지를 확보하기 위해 관습적으로 불을 지르는 행위나 지역적 갈등에서 비롯된 방화가 여전히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 기상 조건이 최악인 상황에서 자행된 이러한 행위는 지역 생태계뿐만 아니라 인근 주민의 생명과 기반 시설까지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스페인 기상청(AEMET)과 산림 정책 전문가들은 "불을 끄는 데 집중하는 현재의 전략은 한계에 봉착했다"고 입을 모은다. 다발적인 화재 앞에서는 첨단 장비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구조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촌 재활성화: 방목 위주의 축산업을 지원하여 자연적인 연료 제거 시스템을 복원해야 한다.
토지 이용 모델 재설계: 산림의 연속성을 끊어주는 모자이크형 경관을 인위적으로 조성하여 대형 화재로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
기후 적응 기금 운용: 산불 진압 비용보다 저렴한 '예방적 산림 관리'에 공적 자금을 우선 투입해야 한다.

이번 칸타브리아와 아스투리아스의 산불은 우리에게 엄중한 경고를 던지고 있다. 불은 더 이상 계절을 가리지 않으며, 방치된 국토는 언제든 재앙의 근원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와 기후 위기에 발맞춘 통합적인 국토 관리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뜨거운 바람이 불 때마다 스페인의 산야는 반복되는 화마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영토의 안녕은 곧 국가의 안녕이다. 이제는 사후 약방문식의 대응을 멈추고, 숲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구조적 대안을 실천해야 할 때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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