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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연합(EU)의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방식과 동물 복지의 미래를 판가름할 역사적인 재판이 룩셈부르크에서 열렸다. 유럽연합 사법재판소(TJUE)는 지난 2021년 140만 명의 시민이 참여한 '철장 시대 종결(End The Cage Age)' 주도권을 수용하고도 약속된 입법을 이행하지 않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법적 책임을 묻는 심리에 착수했다.
이번 사건은 EU 집행위원회가 시민 주도권(ICE)을 통해 공식화된 공약을 이행하지 않아 법정에 서게 된 최초의 사례로, 유럽 내 직접 민주주의 제도의 효력에 관한 중대한 헌법적 선례가 될 전망이다.
140만 시민의 목소리, 그리고 깨진 약속
사건의 발단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 140만 명(스페인 8만 5천 명 포함) 이상의 유효 서명을 확보한 '철장 시대 종결' 시민 이니셔티브는 축산업 현장에서 동물을 좁은 철장에 가두어 사육하는 방식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EU 집행위원회는 해당 제안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2023년 말까지 가공·비가공 축산물 전반에 걸쳐 철장 사육을 금지하는 입법안을 제출하겠다고 공식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약속된 기한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법안은 제시되지 않았으며, 집행위는 명확한 향후 일정조차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에 170여 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시민 위원회'는 2024년 3월, 집행위원회의 불이행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5인 판사단 구성… 사안의 엄중함 반영
이번 재판은 통상적인 3인 판사 체제가 아닌 5인으로 구성된 '확대 재판부(Extended Chamber)'가 맡았다. 이는 이번 사안이 단순한 행정 절차의 지연을 넘어, EU 내 민주적 참여 기제의 신뢰성과 집행위원회의 법적 의무 범위를 다루는 '헌법적 중요성'을 띠고 있음을 시사한다.
심리 과정에서 재판부는 집행위원회 측에 입법 지연의 구체적인 사유와 새로운 이행 일정의 부재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원고 측은 집행위원회가 시민들의 정당한 요구를 수용하여 공표한 이상, 이를 이행할 명확하고 투명한 계획을 제시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통받는 3억 마리의 가축과 과학적 권고
현재 유럽 연합 내에서는 매년 약 3억 마리의 동물이 철장에 갇힌 채 사육되고 있다. 스페인에서만 산란계, 모돈, 토끼, 송아지 등 6,500만 마리 이상이 이 열악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유럽 식품안전청(EFSA) 역시 최근 발표한 과학적 의견서를 통해 동물 복지 증진을 위해 여러 종의 철장 사육을 단계적으로 폐지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또한, 유럽 시민들의 여론도 단호하다. 통계에 따르면:
**89%**의 EU 시민이 개별 철장 사육에 반대한다.
**80%**의 스페인 시민이 동물 복지를 국가적 우선순위로 간주한다.
**48%**의 소비자는 동물 복지가 보장된 제품을 위해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
민주주의적 가치와 정책 신뢰의 기로
재판 당일 룩셈부르크 법원 앞에서는 '컴패션 인 월드 파밍(CIWF)', '동물 복지 관측소(OBA)' 등 유럽 전역의 동물 보호 단체들이 집결해 신속한 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번 재판의 결과는 단순히 축산 방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만약 재판부가 집행위원회의 손을 들어준다면, 향후 시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는 '유럽 시민 이니셔티브'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위험이 있다. 반대로 집행위원회에 입법 명령이나 책임이 부과된다면, EU 행정 기구의 권한 행사에 있어 시민 참여의 법적 구속력이 강화되는 역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유럽 사법재판소의 판결은 향후 몇 달 내에 내려질 것으로 보이며, 전 세계 정책 입안자들과 환경·인권 단체들이 그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