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최대 ‘쓰레기 산’의 변신… 아테네 필리, 유럽 최대 ‘녹색 배터리’로 거듭나다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20 02:54:25
- 연간 4억 kWh 전력 생산 및 탄소 8만 7천 톤 절감 기대… ‘에너지 복지’의 새로운 모델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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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에게 ‘필리(Fyli)’라는 지명은 거대한 악취와 오염의 상징이었다. 아티카 광역권에서 쏟아지는 하루 7,000톤의 도시 폐기물을 집단 매립해 온 발칸 반도 최대 규모의 쓰레기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이 버려진 땅이 유럽 에너지 전환의 상징적인 ‘에너지 허브’로 화려한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아티카의 구멍’에서 ‘그리스의 플러그’로
그리스 당국과 필리 시 정부가 추진 중인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노후 매립지를 단순 폐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해당 부지를 태양광 발전, 대규모 에너지 저장 장치(ESS), 그리고 그린 수소 생산 시설이 결합된 첨단 에너지 복합단지로 재생하는 것이다.
유럽투자은행(EIB)의 검토 단계에 진입한 1단계 사업은 약 1억 6,500만 유로(한화 약 2,400억 원)를 투입하여 125MWp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와 249MWh급 배터리 저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과거 도시의 오물을 삼키던 ‘구멍’이었던 필리가 이제는 그리스 전력망에 청정에너지를 주입하는 ‘거대 플러그’로 체질을 개선함을 의미한다.
그린 수소와 에너지 저장: 탄소 중립의 핵심 거점
단순 전력 생산을 넘어, 필리는 미래 에너지인 ‘그린 수소’의 전초기지로 낙점되었다. ‘필리 그린 수소 이니셔티브(Fyli Green Hydrogen Initiative)’에 따르면, 최종적으로 태양광 발전 용량은 325MW까지 확대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연간 약 476만 ㎏의 그린 수소를 생산하게 된다.
이 프로젝트가 본궤도에 오를 경우, 연간 약 8만 7,7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매년 약 3,270만 리터의 디젤 연료를 대체하는 효과와 맞먹는 수치다. 화석 연료 의존도가 높은 그리스의 물류 운송 및 중장비 산업 분야에서 탄소 중립을 견인할 강력한 동력이 될 전망이다.
‘에너지 민주주의’ 실현: 가계 부문의 실질적 혜택
이번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거대 담론에 그치지 않고 지역 주민의 삶에 직접적인 혜택을 주는 ‘에너지 복지’ 모델을 채택했다는 점이다. 2021년 설립된 시립 에너지 공동체 ‘파에톤(Faethon)’은 이미 초기 태양광 설비를 통해 취약계층 800가구에 매달 300kWh의 전력을 무상 공급하고 있다.
크리스토스 파푸스(Christos Pappous) 필리 시장은 “새로운 대규모 발전 시설이 완공되면 가상 상계(Virtual Net Metering) 제도를 통해 수만 가구의 전기요금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며, “공공 조명 및 가로수 펌프 가동 비용 절감을 통해 확보된 시 예산은 다시 시민 복지로 환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지 재생의 모범 사례, 2029년 상업 가동 목표
유럽연합(EU)의 ‘그린 딜(Green Deal)’ 정책과 궤를 같이하는 이번 사업은 환경 파괴 논란에서 자유롭다는 점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새로운 우량 농지나 자연 보호 구역을 훼손하는 대신, 이미 황폐화된 매립지를 재활용함으로써 환경적 부하를 최소화했기 때문이다.
필리 그린 수소 프로젝트는 오는 2027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착수하여 2029년 1분기 상업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50년간 이어진 악취의 연대기를 끊어내고 녹색 에너지의 상징으로 거듭날 필리의 행보는 전 세계 도시 재생과 에너지 전환의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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