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곤충·거미류 90% '보호 사각지대'… 생태계 지탱하는 '무언의 기둥'이 무너진다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04 13:44:51

- 매사추세츠 대학교 로라 피게로아 교수팀, 북미 서식 9만 9천여 종 전수 조사 결과 발표
- 88.5% 보전 지위 미확보, 75.3%는 멸종 위기 평가조차 이뤄지지 않아
- 심미적 가치와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적 보호’가 생태적 공백 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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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대상이자 혐오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곤충과 거미류가 정작 인간의 무관심 속에서 조용한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생태계의 거대한 하부 구조를 지탱하는 이들의 보존 상태가 사실상 '데이터 공백' 상태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세계적인 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북미 대륙에 서식하는 곤충 및 거미류의 약 90%가 보존 상태를 알 수 없는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매사추세츠 대학교 애머스트(UMass Amherst)의 생물학자이자 곤충학자인 라우라 피게로아(Laura Figueroa)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북부를 아우르는 역대 가장 방대한 규모의 곤충·거미류 인벤토리를 구축했다.

조사 결과, 해당 지역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된 종은 총 99,312종에 달했다. 그러나 이 중 무려 88.5%가 어떠한 법적 보존 지위도 갖지 못하고 있으며, 75.3%는 멸종 위기 위험성에 대한 기초적인 평가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생태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이들의 개체수 변화 추이가 과학적 감시망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러한 정보의 부재가 단순한 통계적 누락을 넘어 생태계 전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곤충과 거미류는 인간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지구 생명 유지 시스템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수분 및 번식: 농작물과 야생 식물의 수분을 담당하여 식량 안보를 책임진다.
영양분 순환: 유기물을 분해하여 토양의 비옥도를 유지하고 영양분을 재순환시킨다.
먹이사슬 유지: 수많은 척추동물(새, 양서류 등)의 주요 먹이원이 된다.
해충 조절: 천적 관계를 통해 특정 종의 폭발적 증식을 억제한다.
피게로아 교수는 "우리는 이들이 야생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며, "이러한 지식의 공백은 곧 보호 정책의 부재로 이어지며, 결국 생태계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이 하나둘씩 빠지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는 또한 보호 생물 선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심각한 '심미적 편향성'을 꼬집었다. 현재 법적 보호를 받는 곤충들은 대부분 나비나 잠자리처럼 화려하고 대중에게 친숙한 종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미류나 수질 지표종인 날도래(Trichoptera) 등은 상대적으로 외면받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에서 위험 처지에 놓인 것으로 간주되는 곤충·거미류 중 주 정부 법령에 의해 보호받는 종은 단 5.3%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크기가 크고 화려한 종들이 대부분이며, 거미류는 사실상 모든 보존 계획에서 배제되어 있는 실정이다.

보고서는 보호 정책의 부재가 단순히 과학적 관심의 부족 때문만이 아니라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주별 보호 정책을 비교한 결과, 광업이나 에너지 산업 등 추출 산업(Extractive Industries)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일수록 곤충 및 거미류 보호에 소홀한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반면, 환경 교육 수준이 높은 지역일수록 적극적인 보존 조치를 시행하고 있었다.

대중 매체에서는 흔히 '곤충 아포칼립스(Insect Apocalypse)'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위기를 경고하지만, 정작 이를 입증하고 대처할 기초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점은 뼈아픈 현실이다. 연구팀은 "정보가 없으면 보호도 없다"는 명제를 강조하며, 정책 결정자들이 곤충과 거미류를 단순한 '해충'이나 '공포의 대상'이 아닌 생태계 서비스의 핵심 주체로 인식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인간의 호불호와 상관없이 곤충과 거미류는 지구의 건강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존재다. 이번 연구는 북미 대륙을 대상으로 했으나,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혐오감에 눈을 돌리는 사이, 생태계의 근간을 이루는 90%의 생명체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보기 좋은 생물'을 넘어 '꼭 필요한 생물'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법적 보호 장치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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