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무너진다… 30년간 해안선 1만 2,800km 상실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04 14:24:22
- 전체 해안의 23%서 급격한 후퇴… ‘스웨이츠’ 등 핵심 빙하 붕괴 가속화
- 전문가들 "기후 변화로 인한 따뜻한 해수 유입이 빙하 하부 잠식"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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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마지막 보루로 불리는 남극 대륙이 기후 변화의 직격탄을 맞으며 그 지형적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최근 발표된 국제 공동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0여 년간 남극 대륙에서 육지 빙하와 바다 위의 빙붕(Ice Shelf)이 만나는 지점인 ‘접지선(Grounding Line)’이 무려 1만 2,800km나 후퇴한 것으로 드러났다.
30년의 기록, 위성이 포착한 ‘하얀 대륙’의 변모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UC) 연구팀과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가 주도한 이번 연구는 1992년부터 2025년까지 총 15개의 위성 미션 데이터를 정밀 분석한 결과다. 연구팀은 민간 영역의 합성개구레이더(SAR) 기술을 포함한 첨단 관측 장비를 동원해 남극 해안선의 이동 경로를 역사상 가장 정밀한 지도로 재구성해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남극 해안선의 약 77%는 비교적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나머지 23% 구역에서는 매우 급격하고 파괴적인 후퇴가 관측되었다. 지난 30년 동안 이 취약 지역에서 사라진 빙하 면적은 연평균 442$km^2$에 달한다.
‘카드의 집’처럼 무너지는 서남극 빙하
연구를 이끈 에릭 리그놋(Eric Rignot) 교수는 현재 남극의 상황을 "일부 지역에서는 마치 '카드의 집'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급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묘사했다. 특히 서남극의 아문센해(Amundsen Sea)와 게츠(Getz) 빙붕 인근의 상태가 심각하다.
상세 조사 결과, 주요 빙하들의 후퇴 속도는 경이적일 만큼 빠르다.
-스미스(Smith) 빙하: 약 42km 후퇴
-이나(Ina) 빙하: 약 33km 후퇴
-스웨이츠(Thwaites) 빙하: 약 26km 후퇴
일명 ‘종말의 날 빙하’로 불리는 스웨이츠 빙하의 접지선 후퇴는 전 지구적 해수면 상승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과학계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접지선이 뒤로 밀려난다는 것은 육지 위에 붙어있던 빙하가 바다로 떠오르며 녹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이는 곧 대륙 빙하의 흐름을 막아주던 '댐'의 붕괴를 뜻하기 때문이다.
원인은 ‘따뜻한 바닷물’의 침입
과학자들은 이러한 급격한 변화의 주범으로 기후 변화에 따른 해류의 변화를 지목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바람의 패턴이 바뀌면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심해수가 빙붕 아래쪽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따뜻한 바닷물은 빙하가 지면과 맞닿은 부분인 접지선을 깎아내며 빙하의 하부를 직접 잠식하고 있다.
다만, 연구팀은 남극 반도 북동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일부 패턴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는 남극의 기후 시스템이 우리가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며, 여전히 미지의 변수가 존재함을 시사한다.
해수면 상승의 전초전… 국제적 공조 절실
접지선의 후퇴는 단순한 지리적 변화를 넘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접지선이 후퇴할수록 대륙 내부의 빙하가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며, 이는 곧 직접적인 해수면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번 연구는 미세한 변화라도 특정 임계점(Tipping Point)을 넘어서면 걷잡을 수 없는 붕괴로 이어질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리그놋 교수는 "상업 위성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극지 관측의 패러다임을 바꿨으며, 이제는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더욱 정교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 논문은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최신호에 게재되었으며,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글로벌 정책 결정의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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