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단백질’의 배신? 가공 과정서 치솟는 홍합의 탄소 발자국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04 14: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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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물 중에서도 가장 친환경적인 식재료로 꼽히는 홍합이 가공 및 유통 단계를 거치며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변모한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원재료 상태에서는 환경 부하가 매우 낮지만, 우리가 흔히 소비하는 통조림이나 가공품 형태로 변하는 순간 탄소 발자국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지적이다.
칭송받던 ‘착한 단백질’ 홍합, 공장을 만나다
스페인 국립연구협의회(CSIC)가 최근 국제 학술지 ‘자원, 보존 및 재활용(Resources, Conservation and Recycling)’에 게재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홍합의 산업화 정도와 상업적 유통 경로가 제품의 최종 탄소 배출량을 결정짓는 핵심 변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래 홍합은 육상 가축과 비교했을 때 압도적으로 낮은 환경 파괴 지수를 자랑한다. 바다 위 뗏목(바테아)에서 양식되는 홍합은 별도의 사료 공급이 필요 없다. 스스로 바닷물을 여과하며 영양분을 섭취하기에 사료 생산에 따른 곡물 소비나 토지 점유가 발생하지 않으며, 담수 사용량 또한 거의 전무하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홍합은 그간 기후 위기 시대의 ‘지속 가능한 단백질’로 추앙받아 왔다.
그러나 문제는 ‘산업화’의 문턱을 넘으면서 발생한다. 홍합이 통조림 공정으로 들어가는 순간, 세척과 선별을 시작으로 고온 조리, 살균, 캔 밀봉 등 에너지 집약적인 단계가 반복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전력과 열에너지는 홍합의 순수한 환경적 이점을 상쇄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통조림 1kg당 이산화탄소 6.3kg 배출… 소고기보다는 낮지만 ‘경계’ 대상
연구팀의 계산에 따르면 스페인의 연간 홍합 생산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₂)는 약 288톤에 달한다. 이 중 통조림 생산에서만 약 190톤이 발생하는데, 이를 가공된 홍합 살(껍데기 제외) 1kg으로 환산하면 약 6.3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는 셈이다.
물론 이는 수십 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소고기나 약 7kg을 배출하는 돼지고기에 비해서는 여전히 낮은 수치다. 하지만 가공하지 않은 신선 어류나 냉동 제품과 비교하면 그 격차는 확연하다. 특히 식초와 기름 등을 섞은 소스에 절인 ‘에스카베체(Escabeche)’ 형태의 통조림은 모든 가공 방식 중 가장 높은 탄소 발자국을 기록했다. 반면 냉동 홍합은 통조림에 비해 대기 오염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바르셀로나 해양과학연구소(ICM-CSIC)의 몬세라트 라몬(Montserrat Ramón) 연구원은 “홍합은 본질적으로 배출량이 적은 해양 단백질이지만, 산업화 수준과 상업적 물류 흐름에 극도로 민감한 품목”이라고 설명했다.
물류의 역설: 산지 갈리시아에서 식탁까지의 ‘먼 여정’
가공 공정 외에도 ‘물류 경로’가 탄소 배출의 또 다른 핵심 축으로 지목되었다. 스페인 홍합 생산량의 99%는 북서부 갈리시아(Galicia) 지방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산된 신선 홍합 중 스페인 국내에서 직접 소비되는 비중은 25%에 불과하다.
나머지 물량은 대부분 가공되어 해외로 수출되거나 장거리 운송을 거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운송 수단의 탄소 배출이 최종 소비 단계의 탄소 발자국을 더욱 무겁게 만든다. 연구원 파블로 사라레기(Pablo Saralegui)는 “신선 홍합과 냉동 홍합의 소비를 장려하고 물류 흐름을 최적화하는 것만으로도 수산물 분야의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제언했다.
지속 가능한 수산물을 향한 과제
전문가들은 이제 홍합 생산의 ‘양적 확대’보다는 ‘질적 지속 가능성’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운송 경로의 단축, 재활용 가능한 친환경 포장재 도입, 가공 공정 내 에너지 효율 극대화 등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결론적으로 홍합은 여전히 소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훌륭한 대안 식재료다. 하지만 ‘통조림’이라는 편리함 뒤에 숨겨진 탄소 비용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소비자들이 식탁 위 홍합이 어떤 경로를 통해 왔는지 고민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저탄소 수산물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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