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셀라병 정복의 새 지평: 아르헨티나 연구진, 박테리아 생존의 ‘핵심 센서’ 규명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02 16:59:51

- CONICET·렐로와르 연구소, 철·망간 감지 단백질 기전 발견
- 전 세계 연간 50만 명 감염… 만성 질환 억제할 새로운 치료 표적 제시


(C) econoticias


인수공통전염병이자 축산업계의 고질적인 난제인 브루셀라병(Brucellosis)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 표적이 발견되었다. 최근 아르헨티나 국립과학기술연구위원회(CONICET)와 렐로와르 연구소(Fundación Instituto Leloir) 공동 연구팀은 브루셀라 박테리아가 숙주의 면역 체계를 뚫고 생존하는 데 필수적인 ‘금속 이온 센서’의 작동 원리를 규명했다고 발표했다.

박테리아의 ‘생존 레이더’, 철과 망간을 포착하다
브루셀라균은 세포 내 기생 박테리아로, 숙주 동물의 세포 안에서 끈질기게 생존하며 증식하는 특성을 가진다. 연구팀에 따르면, 브루셀라균 내부의 특정 단백질 두 종류가 숙주 세포 내에서 철(Fe)과 망간(Mn)의 농도를 감지하는 ‘센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미네랄은 박테리아의 대사 활동과 복제에 필수적인 영양소다. 연구를 주도한 전문가들은 “박테리아가 숙주의 척박한 내부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금속 이온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획득하고 조절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이번에 발견된 단백질 센서들은 박테리아가 주변 환경 변화에 적응하도록 돕는 일종의 통제 센터와 같다”고 설명했다.

‘조용한 살인마’ 브루셀라병, 왜 위험한가
브루셀라병은 소, 돼지, 염소 등 가축뿐만 아니라 개와 같은 반려동물을 통해 인간에게도 전염되는 대표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 수의업계의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매년 약 50만 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

인간이 감염될 경우 파상열(오르내리는 열), 오한, 관절통, 만성 피로 등의 증상이 나타나며,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척추염, 고환염, 심내막염 등 심각한 합병증으로 이어진다. 특히 축산 농가에서는 가축의 유산과 불임을 유발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초래하는 주범으로 꼽힌다. 기존 항생제 치료는 복용 기간이 길고 재발률이 높아, 보다 정밀하고 강력한 치료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미래형 치료제 개발의 청신호: ‘센서 차단’ 전략
이번 연구의 핵심은 박테리아의 ‘생존 지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전략적 지점을 찾아냈다는 데 있다. 연구팀은 이 금속 이온 센서 기능을 억제할 수 있다면, 박테리아가 숙주 내에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게 하거나 대사 오류를 일으켜 감염 초기 단계에서 증식을 차단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단순히 박테리아를 죽이는 기존의 광범위 항생제 방식에서 벗어나, 특정 생존 기전만을 정밀 타격하는 ‘표적 치료’의 가능성을 연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항생제 내성 문제를 최소화하면서도 치료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 기술 강국으로 향하는 아르헨티나의 저력
이번 성과는 아르헨티나 과학계의 탄탄한 기초 연구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렐로와르 연구소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렐로와르 박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곳으로, 분자 생물학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발견은 기초 과학에 대한 투자가 어떻게 공중보건 및 산업적 도구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아르헨티나 정부와 연구팀은 이번 임상적 단서를 바탕으로 센서 단백질을 차단하는 화합물 스크리닝과 후속 신약 개발 단계에 착수할 예정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변종 바이러스와 세균의 위협이 커지는 가운데, 아르헨티나에서 날아온 이번 ‘브루셀라 센서 규명’ 소식은 인류와 동물의 공동 건강을 지키는 ‘원 헬스(One Health)’ 실현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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