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수산업계 입김에 흔들리는 UN 글로벌 해양 조약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4-02 21: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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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구적 해양 생태계 보존을 위한 ‘UN 글로벌 해양 조약’이 이행 초기 단계부터 강력한 암초에 부딪혔다. 해양 보호구역 설정을 주도해야 할 각국 정부 대표단 내부에 수산업계 관계자들이 대거 포진해 의사결정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현지 시간으로 2일, 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 International)가 발표한 최신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공해(High Seas)의 생물 다양성 보호 규칙을 정하는 뉴욕 UN 회의에서 수산업계의 영향력이 통제 불능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의 핵심은 ‘대표단의 구성’이다. 최근 5년간 진행된 주요 해양 관련 국제회의를 분석한 결과, 각국 공식 대표단의 평균 28~29%가 수산업계 관계자들로 채워졌다. 일부 국가의 경우 이 비율이 35%를 상회하며, 2021년 미주열대다랑어위원회(IATTC) 회의 당시에는 특정 대표단의 무려 44.2%가 업계 이해관계자로 구성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해양 보존을 위해 객관적인 정책을 수립해야 할 정부 협상 테이블에 규제 대상자인 산업계가 직접 앉아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린피스는 이를 두고 "경제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집단이 생태계 보호라는 공익적 결정을 주도하는 심각한 구조적 모순"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수산업계는 국가 대표단 내 기술 고문이나 위원 자격으로 참여하며 교묘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보호구역 설정안에 대한 기술적 이의 제기 ▲검토 프로세스의 의도적 연장 ▲해양 보호의 과학적 근거에 대한 의문 제기 등을 통해 보존 조치의 도입을 늦추거나 범위를 축소하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지역수산기구(RFMO)의 권한 강화다. 현재 논의 중인 조약 초안이 수산 자원 채취에 우호적인 RFMO에 해양 보호구역 설정에 대한 결정적 권한을 부여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사실상 ‘수산 기구에 의한 해양 보호 거부’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러한 로비 활동은 지난 수십 년간 해양 자원을 무분별하게 착취해 온 기존의 산업 모델을 고수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과학계가 "기후 위기와 멸종을 막기 위해 2030년까지 전 세계 바다의 30%를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30x30 목표)"고 경고하고 있음에도, 산업계의 저항으로 인해 실제 이행 속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1월 발효된 글로벌 해양 조약이 ‘종이 호랑이’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근본적인 거버넌스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린피스는 2027년 개최 예정인 ‘해양 당사국 총회(COP)’ 이전에 다음과 같은 긴급 조치를 취할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했다.
검토 기간 제한: RFMO 등 특정 기구가 보호구역 설정을 무한정 늦추지 못하도록 검토 기간을 최대 120일로 제한할 것.
대표단 투명성 강화: 모든 국가 대표단의 소속과 기술적 역할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업계와의 유착 관계를 차단할 것.
과학 기반 의사결정: 경제적 논리가 아닌 독립적인 과학 위원회의 권고를 우선적으로 정책에 반영할 것.
현재 뉴욕에서 진행 중인 협상은 인류 공동의 자산인 바다를 다음 세대에 온전히 물려줄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만약 수산업계의 로비에 휘말려 조약의 실효성이 약화된다면, 해양 생태계 복원의 마지막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번 폭로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UN 협상장으로 향하고 있는 가운데, 각국 정부가 산업계의 압박을 이겨내고 진정한 의미의 '지구의 푸른 심장' 보호를 선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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