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대명사 버드와이저 캔에 물담아 생산한 이유
[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 "큰 회사가 가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 지수는 어느 정도입니까. "
이곳 사회적 책임(CSR) 시대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때가 올 것이다.
불금이다. 청춘에게 잘 어울리는 토속적인 단어로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이면 불금 난리들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술집은 야단법석이다.
지난달 남북한 전쟁모드로 가는 긴장감 속에서도 전국 곳곳 청춘들이 모이는 공간 속칭 물좋은 곳은 전혀 다른 분위기로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청춘들이 스트레스는 푸는데 첫 번째 매개체는 술문화다.
이중 소주 다음으로 즐겨마시는 술은 맥주다. 국내 맥주 브랜드는 밝히지 않았다. 해외 유수한 맥주로 버드와이저, 칼스버그, 기네스, 호가든, 하이네켄 등등 국내 청춘 남녀들의 심금을 울린 맥주다. 일본산 맥주도 더 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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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데일리 |
이 가운데 수많은 종류의 맥주 중 전쟁과 연결된 맥주는 버드와이저(Budweiser)다. 바로 미국와 한판 붙었던 베트남 공산당과 싸운 우리나라 청춘들까지 참전한 월남전, 버드와이저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본사를 두고 앤호이저 부쉬(Anheuser Busch) 회사에서 생산하고 있다.
버드와이저에서 반가운 일이 있었다. 3개월전 지난 5월, 미국 조지아주의 카스터빌 공장에서 맥주 생산을 잠시 중단했다. 24시간 풀가동 생산을 해도 시원찮을 판에 생산을 멈춘 것 이유가 따로 있었다. 버드와이저의 발상전환에 자사의 브랜드를 지운 것이다.
맥주캔에는 제조사도 제품명도 없는 맥주를 생산했다. 사진에서 자세하게 들려다보면 캔 윗부분에 작은 글씨로 앤호이저 부쉬라고 새겨져 놨다. 또 버드와이저의 상징 마크 버드 윙만 박았다. 마치 미국 특수부대 씰 기장처럼 말이다. 미국이 어렵다고 싸운다는 의미도 있었던 모양이다.
왜 이런 짓을 했을까 의구심이 든다. 맥주캔 안에는 술이 알콜이 든 맥주가 아닌 그냥 물을 넣어 생산했다.
맥주대신 생산한 물이 담긴 캔은 무려 5만개에 달했다. 버드와이저 임직원들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속사정을 알고 보니, 그 이유는 미국 텍사스와 오클라호마에 불어닥친 태풍으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물이 부족했다. 자연재해에는 선진국도 맥못추는 건 마친가지다. 버드와이저는 상호대신 앤호이저 부쉬의 아주 작은 인쇄된 캔을 이재민들에게 긴급 공수했다. 이 캔들은 미국 적십자사를 통해 이재민에게 전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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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기업들과 사뭇 다른 기운이 밀려온다.
맥주를 파는 대신 물을 담아 나눠졌으니 손해를 봤을 것은 뻔하다. 하지만 그 손해 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만들어냈다. 기업의 이미지는 바로 제품 그 이상만큼 중요한 시대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이기기 위한 사화적 책임은 국경이 없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들도 여러가지 어려운 역경속에 고군분투를 하고 있는 점도 잘 기억하고 있다. 버드와이저는 이번 물을 담은 캔 생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이들은 항상 미국 내에 어떤 문제가 있을때 마다 자발적으로 앞장 섰다고 했다.
이쯤에서 우리나라 대표 기업, 글로벌 기업인 삼성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언제부터 삼성의 브랜드 앞에서 여러가지 고유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멋쩍은 수식어와 달리 부끄러운 삼성으로 변질되고 있다. 바로 삼성반도체 피해 근로자와 유가족에 대한 통쾌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긴 시간때문에 서로 지쳤을 법하지만, 삼성이라는 큰 조직에서 발상의 전환, 글로벌 다은 큰 기업의 발자취는 자꾸 뒷골목으로 숨어들어가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이미 국민들은 알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을 숨기려는지, 어떤 꼼수로 대응하는지를, 그동안 수백번을 수천번을 호소한 이들의 피눈물에 꼼수의 올가미로 채우지 않았으면 한다.
사회적 책임은 말 그대로 의무와 책임이 공존해야 비로소 아름다운 기업이 될 자격이 있다. 매출액 영업이익 수천억원, 수조원이라면 이라고 하면 무슨 소용있을까. 소외계층에 대한 눈물 맺힌 이들의 심장의 소리를 들어줘라.
버드와이저처럼 큰 회사가, 대기업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언제부터인지 국내 기업들은 정치화된 경영에 목을 매고 있다. 만일에 하나 소신있는 기업이 정치권에서 눈밖에 나면 도산한다는 시대는 지났다. 국민 앞에 정치가 있지 정치 앞에 기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라,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앞에서 순한 양의 발을 내밀고 뒤에서는 발뺌하는 못된 늑대발을 그만 보여라. 제발.
세상의 이치를 정치와 물력으로 내몬다면 나라가 흔들릴 때, 국민들은 등을 돌렸던, 역사에서 수백번 겪은 몸속에 충분한 DNA가 조상대대로 물려받는 민족이 우리가 아닌가.
어느날 부터 작은 가게들이 사라지고 엄청난 가게, 엄청난 건물들로만 가득 체운 이 좁은 땅 대한민국, 버드와이저와 같은 결단이 가뭄속 단비처럼 그립다.
정치꾼들이 호소하는 대승적 차원이라는 사탕 발림의 단어보단 실천적, 사회적 책임에 진정성을 보여주는 기업이 아주 많이 나오기 바란다.
자영업자 수입 100만원 시대, 할퀴고 멍들고 피투성이된 중소상공인들의 아이템을 빼앗아 사업을 넘보지 말고 큰 힘과 권력을 이용해 배푸는 기업, 그런 기업이 아름다운 기업의 뿌리가 아닌가.
2015년도 국감에서 난도질 하고 있는 환경분야를 비롯 곳곳에서 벌어진 대기업들의 권력형 사업확장이 이제는 설악산까지 자신들의 사업텃밭으로 토착화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누구로부터 움직이며 누가 나라의 주인인지, 또한 오늘의 대기업은 누구로부터 존재했나. 되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