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프니츠 연구소 “센서 미비로 소형 동물 식별 불가, 보호종 수난”
- 독일 시·군 협의회, 연방 차원의 야간 운행 금지 및 강력한 과태료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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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으나, 도시와 공생하는 작은 생명체들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독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도시 생태계의 일원인 고슴도치와 소형 야생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야간 로봇 잔디깎이(Robot Mowers) 사용 금지라는 강도 높은 규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독일 시·군 협의회(Deutscher Städte- und Gemeindebund)는 최근 급증하는 고슴도치 및 소형 파충류의 폐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적인 야간 로봇 잔디깎이 운행 금지를 강력히 요청했다. 약 3,200개의 지방자치단체와 5,400만 명의 시민을 대변하는 이 단체의 목소리는 단순한 권고를 넘어 실질적인 법적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유럽 전역의 가정 정원과 도시 녹지에서 널리 사용되는 로봇 잔디깎이는 소음이 적고 관리가 편하다는 장점 때문에 야간에 가동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기기들이 야행성 동물인 고슴도치에게는 ‘조용한 살인마’로 돌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 라이프니츠 야생동물 연구소(Leibniz-IZW)가 2024년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로봇 잔디깎이 보급률과 고슴도치의 부상 및 사망률 사이에는 명확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 측은 시중에 유통되는 대다수의 로봇 잔디깎이가 고슴도치와 같은 작은 생명체를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고슴도치의 생존 본능이 오히려 화를 키우고 있다. 위협을 느끼면 도망치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고슴도치는 몸을 공처럼 둥글게 마는 본능적 방어 기제를 가지고 있다. 로봇 잔디깎이의 날카로운 칼날 앞에서 이러한 방어 자세는 무용지물이며, 결국 심각한 신체 절단이나 두부 손상으로 이어져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연구 보고서는 제조업체들의 마케팅 문구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대다수 제조사는 자사 제품에 정교한 안전 센서가 탑재되어 있다고 광고하지만, 실제 실험 결과 소형 동물을 감지해 멈추는 기능은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술적으로 동물을 식별할 수 있는 솔루션이 이미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비용 절감 등을 이유로 이를 채택하지 않은 것은 기업의 윤리적 책임 문제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독일 야생동물 보호 전문가들은 "서식지 상실로 인해 도시 정원으로 밀려난 고슴도치들이 이제는 인간이 만든 자동화 기기에 의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며 "단순한 주의 당부로는 이 비극을 멈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독일 내에서 고슴도치는 법적 보호를 받는 '보호종'이다. 현행법상 고슴도치를 고의나 부주의로 살상하거나 다치게 할 경우, 각 연방 주에 따라 최소 5,000유로(한화 약 730만 원)에서 최대 50,000유로(한화 약 7,300만 원)에 달하는 막대한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로봇 잔디깎이 사용 중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미비해 법적 공백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번 금지 조치안이 연방 정부 차원에서 통과될 경우, 야간 시간대(통상 일몰 후부터 일출 전까지)에 로봇 잔디깎이를 가동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화되어 처벌 대상이 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고슴도치 한 종을 구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로봇 잔디깎이의 칼날은 고슴도치뿐만 아니라 개구리, 도마뱀과 같은 양서류·파충류는 물론, 도시 생태계의 기초가 되는 메뚜기, 거미 등 곤충류까지 무차별적으로 살상하고 있다.
이는 도시 녹지의 생물 다양성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요소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 도입된 기술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지탱하는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독일의 이번 행보는 '편리함'과 '생명 보호'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국가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 시·군 협의회는 "시민들이 야간 가동을 멈추는 작은 실천만으로도 수천 마리의 생명을 살릴 수 있다"며 시민들의 자발적인 동참과 더불어 조속한 법제화를 촉구했다.
기술의 진보가 생명에 대한 존중을 앞지르지 않도록, 독일의 정원은 이제 밤마다 기계 소음을 멈추고 작은 생명들의 안전한 보금자리로 되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