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꿀벌 개체 수 70% 급감 등 환경 피해 입증… ‘건강한 환경권’ 우선 가치 인정
- 2년 유예기간 두려던 정부 계획에 제동, “즉각적인 수입·판매 중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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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생물 다양성의 보고(寶庫)로 알려진 코스타리카가 생태계 교란과 꿀벌 집단 폐사의 주범으로 지목된 살충제 ‘피프로닐(Fipronil)’에 대해 전면 금지라는 강력한 칼날을 빼 들었다.
코스타리카 헌법재판소는 지난 8일(현지 시각), 피프로닐 성분이 포함된 모든 살충제의 등록, 수입, 판매 및 사용을 즉각 중단하도록 명령하는 역사적인 판결을 내렸다. 이번 결정은 농약 사용으로 인한 환경 파괴가 국민의 건강권과 생태계 유지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을 입히고 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사법부가 공식적으로 수용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푼타레나스의 비명, 사법부를 움직이다
이번 금지 조치의 발단은 코스타리카 푼타레나스주 레판토(Lepanto) 지역의 양봉업자들이 제기한 강력한 고발에서 시작되었다. 해당 지역 양봉가들은 인근 농경지에서 진행된 대규모 항공 및 지상 살충제 살포 이후, 꿀벌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처참한 광경을 목격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에서만 약 300여 개의 벌통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았으며, 24개 이상의 꿀벌 군집이 완전히 궤멸했다. 특히 전체 꿀벌 개체 수의 약 70%가 급감하는 등 양봉 산업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했다. 양봉업자들은 “집약적인 농업 방식에서 사용되는 독성 물질이 꿀벌의 신경계를 마비시키고 집단 폐사를 유도했다”며 사법부에 구제를 요청했다.
과학적 근거와 ‘건강한 환경권’의 승리
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단순한 민원 해결 차원을 넘어선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국립대학교(UNA)와 코스타리카 대학교(UCR)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연구 보고서를 핵심 근거로 삼았다.
연구 결과, 피프로닐은 꿀벌과 같은 수분 매개자에게 극도의 독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피프로닐은 곤충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여 방향 감각 상실, 섭식 장애를 일으키며 결국 군집 전체의 붕괴를 초래한다. 재판부는 이러한 생태적 재앙이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식량 안보’를 위협하며, 헌법이 보장하는 ‘건강하고 생태적으로 균형 잡힌 환경에서 살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정부의 ‘미온적 대응’에 경종
당초 코스타리카 정부는 피프로닐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24개월에 걸쳐 단계적으로 사용을 줄여나가는 행정 명령을 검토 중이었다. 그러나 사법부는 사안의 시급성을 고려할 때 2년이라는 유예 기간은 생태계 복구가 불가능해질 수 있는 ‘방관’에 가깝다고 보았다.
이번 판결에 따라 정부의 단계적 퇴출 계획은 전면 폐기되었으며, 수입부터 최종 사용 단계까지 모든 과정이 즉각적으로 차단되는 ‘무관용 원칙’이 적용된다. 이는 경제적 논리나 농업계의 편의보다 환경적 공익을 우선시한 파격적인 결정이다.
꿀벌 보호, 인류의 생존 전략
꿀벌은 전 세계 작물의 70% 이상을 수분시키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코스타리카 당국은 꿀벌의 실종이 단순히 양봉 산업의 위축에 그치지 않고, 농작물 생산량 감소와 식생 변화로 이어져 결국 인간의 건강과 경제 체계 전반에 타격을 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코스타리카의 이번 조치는 살충제 규제를 망설이는 전 세계 국가들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생물 다양성 보호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요건임을 사법적으로 증명했다”고 분석했다.
환경 단체들은 이번 판결을 환영하며, 피프로닐 외에도 생태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른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들에 대해서도 규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탄소 중립과 환경 보호의 선두 주자인 코스타리카의 이번 결정이 글로벌 농화학 시장과 환경 정책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