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암살자' 농약, 물고기 수명 갉아먹는다…생물학적 노화 가속 확인

고용철 기자 / 2026-04-09 18:43:04
- 미 노터데임대 연구팀, 사이언스(Science)지에 충격적 연구 결과 발표
- 저농도 살충제 '클로르피리포스', 텔로머레 단축 및 세포 노폐물 축적 유발
- "즉사하지 않아도 늙어서 죽는다"…생태계 회복력 파괴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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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농업의 필수재로 여겨져 온 살충제가 수생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단순히 '치사량'의 문제를 넘어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농업용 살충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어류는 생물학적 노화가 급격히 진행되어 조기에 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규제 당국이 정한 '안전 수치' 이하의 농도에서도 발생하는 현상으로, 환경 독성학계에 큰 파장을 던지고 있다.

보이지 않는 습격: '즉사' 대신 '노화'를 택한 살충제
우리는 통상 오염된 하천이라고 하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해 수면에 떠오르는 광경을 떠올린다. 하지만 미국 노터데임 대학교의 제이슨 로어(Jason Rohr) 교수팀이 주목한 지점은 달랐다. 연구팀은 비가 올 때마다 논밭에서 씻겨 내려오는 저농도의 농약 성분이 장기간에 걸쳐 어류의 몸속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에 집중했다.

연구의 핵심 주범은 유기인계 살충제인 '클로르피리포스(Chlorpyrifos)'였다. 이 성분은 신경 독성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번 연구는 이 화학 물질이 어류의 '생체 시계' 자체를 가속화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텔로미어의 단축, 세포 내 쓰레기 축적이 증거
연구팀은 노화의 척도를 측정하기 위해 두 가지 핵심 지표를 사용했다. 첫 번째는 염색체 끝단에서 유전 정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Telomere)'다. 운동화 끈 끝의 플라스틱 캡과 같은 역할을 하는 텔로미어는 세포 분열이 반복될수록 짧아지며, 이것이 일정 수준 이하로 줄어들면 생물은 노화하고 사망에 이른다.

두 번째 지표는 세포 내 노폐물인 '리포푸신(Lipofuscin)'의 축적이다. 연구팀이 오염된 호수와 깨끗한 호수의 어류를 비교 분석한 결과, 동일한 날짜에 태어난 물고기임에도 불구하고 오염된 환경에 노출된 개체는 텔로미어가 현저히 짧았으며 간 조직 등에서 리포푸신 수치가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로어 교수는 "연대기적 나이는 같을지언정, 오염된 물속의 물고기들은 생물학적으로 훨씬 더 늙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3년간의 추적과 실험실의 증명: 2만 4천여 마리의 경고
이번 연구는 2020년부터 2023년까지 중국 내 오염도가 각기 다른 3개의 호수에서 서식하는 '강준치(Culter dabryi)' 24,388마리를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오염이 심한 호수일수록 고령의 물고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는 치어가 태어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성어들이 노화 가속으로 인해 수명을 다 채우지 못하고 폐사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구팀은 인과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실험실 대조 실험을 병행했다. 실제 하천과 유사한 저농도의 클로르피리포스에 물고기를 노출시키자 자연 상태와 동일한 텔로미어 단축 현상이 관찰되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고농도의 짧은 노출은 즉각적인 중독사를 일으켰지만 노화 현상은 유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직 '낮은 농도의 장기 노출'만이 생물학적 시계를 앞당겼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노령 개체의 실종은 심각한 위협이다. 일반적으로 몸집이 크고 나이가 많은 물고기는 산란량이 많고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높다. 이들이 사라진 생태계는 폭염, 산소 부족, 수량 변화와 같은 외부 충격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생물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수산 자원의 지속 가능성이 파괴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국제적 규제 흐름과 한국에의 시사점
이미 유럽연합(EU)은 지난 2020년 1월, 인체의 신경 발달 장애와 유전 독성 우려를 이유로 클로르피리포스의 사용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그러나 미국 일부 지역과 중국을 비롯한 다수의 국가에서는 여전히 사용 중이며, 이번 연구 결과는 현재의 안전 기준치가 실제 생물학적 피해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우리에게 중요한 숙제를 던진다. 환경 규제의 기준이 단순히 '지금 당장 죽느냐'가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며 생태계의 허리를 끊느냐'에 맞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장기적인 모니터링과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저농도 잔류 농약이 수생 생물과 나아가 인간에게 미칠 노화 가속의 위협에 대해 보다 철저한 조사가 시급한 시점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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