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의 탐욕인가, 생존의 선택인가… 아르헨티나 ‘빙하법 개정’ 잔혹사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31 0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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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가 전 지구적 재앙으로 부상한 2026년 봄, 남미의 자원 대국 아르헨티나가 거대한 시대적 갈림길에 섰다. 아르헨티나 정부와 의회가 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추진 중인 ‘빙하 보호법(Ley de Glaciares)’ 개정안이 수자원 안보를 위협하고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비판에 직면하며 극심한 사회적 진통을 겪고 있다.
최근 아르헨티나 정계에서 논의 중인 빙하법 개정의 핵심은 광업 자본의 유입을 가로막았던 기존의 엄격한 환경 규제를 완화하는 데 있다. 현행법은 빙하뿐만 아니라 빙하 주변의 ‘주빙하 지역(ambiente periglaciar)’에서의 모든 채굴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개정안은 보호 대상을 축소하고, 개발 허가 기준에 ‘수문학적 중요성’이라는 모호한 개념을 도입하여 사실상 광산 개발의 길을 열어주려 하고 있다.
산후안(San Juan)주를 비롯한 안데스 고산 지대는 금, 은, 구리 등 막대한 광물 자원이 매장된 곳으로, 공교롭게도 이 지역은 빙하와 주빙하 환경이 중첩되는 지점이다. 정부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광업 수출이 필수적이라는 입장이지만, 환경론자들은 이를 “미래의 생명줄을 현재의 돈과 바꾸는 위험한 도박”이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번 논란의 최대 쟁점은 눈에 보이는 빙하가 아닌, 땅속에 얼어붙은 ‘주빙하 환경’의 보호 여부다. 주빙하 지역에 분포하는 ‘암석 빙하(Rock Glacier)’는 겉으로는 바위 더미처럼 보이지만 내부에는 막대한 양의 얼음을 품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암석 빙하가 가뭄 시기에 하천의 유량을 조절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아르헨티나 서부 지역의 700만 명 이상의 인구가 안데스산맥에서 내려오는 수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주빙하 지역의 파괴는 곧 수도 공급의 중단과 농업 용수 부족으로 직결될 수밖에 없다. 과학계는 개정안이 제시하는 ‘수문학적 유의성’이라는 기준이 과학적 근거가 박약하며,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될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다.
안데스의 빙하는 이미 온난화의 직격탄을 맞아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멘도사와 북부 파타고니아 지역의 빙하들은 현 추세대로라면 이번 세기말 이전에 대부분 소멸할 것으로 예측된다. 기후 변화로 인해 강수량과 강설량의 변동성이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빙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하천에 물을 공급하는 ‘자연 댐’ 역할을 수행해 왔다.
만약 법 개정을 통해 이들 보호 구역이 훼손될 경우, 아르헨티나는 미래에 닥쳐올 극심한 가뭄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완충 지대를 잃게 된다. 이는 단순히 환경 보호의 차원을 넘어,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수자원 주권의 포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빙하법 개정안이 공론화되면서 아르헨티나 사회는 찬반 양론으로 갈라져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개최된 공청회에서는 과학자들과 환경 단체, 그리고 깨끗한 물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대거 참여해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빙하는 건드려서는 안 될 성역”이라며, 단기적인 채굴 이익이 가져올 환경적 비용은 수 세대에 걸쳐 국가적 재난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학계의 경고 또한 단호하다. “개발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생태계적 한계를 무시한 모델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빙하는 한 번 파괴되면 현대 기술로도 복구가 불가능한 비가역적 자원이기 때문이다.
2026년 3월의 아르헨티나는 지금 뜨겁다. 광산에서 쏟아져 나올 황금빛 미래를 꿈꾸는 이들과, 안데스의 차가운 얼음 속에 숨겨진 생명의 물을 지키려는 이들 사이의 전쟁은 이제 막 본격적인 서막을 올렸다. 정부가 경제 성장과 환경 보존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 사이에서 어떤 결론을 내릴지, 전 세계의 이목이 안데스의 빙하 끝에 맺힌 물방울에 쏠리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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