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 여성의 불안을 파는 ‘메노워싱’… 과학적 근거 없는 상술에 멍드는 ‘메노코노미’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31 07:11:44
- 자연스러운 생애 주기인 폐경을 ‘치료 대상’으로 규정하여 소비 유도
- 전문가들, “개인의 소비보다 공공 보건 차원의 접근과 과학적 검증 우선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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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사회적으로 금기시되거나 숨겨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폐경(Menopause)’이 최근 미디어와 대중문화의 중심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여성의 생애 주기 중 하나인 갱년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고 가시성이 높아진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타고 ‘메노워싱(Menowashing)’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상술이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메노워싱’이란 폐경을 뜻하는 ‘메노포즈(Menopause)’와 세탁을 뜻하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의 합성어로, 기업들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마치 갱년기 증상 완화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여 판매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이는 환경 경영을 흉내 내는 ‘그린워싱’과 맥락을 같이 하는 기만적 마케팅 기법이다.
최근 급격히 팽창하고 있는 이른바 ‘메노코노미(Menoeconomy, 폐경 경제)’ 시장은 45세 이상의 여성 소비자를 정조준하고 있다. 시중에는 수많은 영양제, 전용 화장품, 웰빙 애플리케이션 및 식단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온다.
메노워싱의 특징은 제품의 구체적인 성분이나 임상적 효능을 설명하기보다 감성적이고 설득력 있는 서사를 앞세운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당신을 되찾으세요”, “호르몬의 균형을 맞추어 진정한 휴식을 얻으세요”와 같은 문구들이 대표적이다. 불면증, 만성 피로, 감정 기복과 같은 실제적인 고통을 겪는 여성들에게 이러한 메시지는 강력한 유혹으로 다가온다.
문제는 이러한 제품들의 상당수가 일반적인 건강기능식품이나 화장품과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갱년기 전용’이라는 라벨을 붙여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업체들은 초기 단계의 불완전한 연구 결과나 개인적인 체험담을 마치 보편적인 과학적 사실인 양 광고하며 소비자의 판단력을 흐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메노워싱 현상의 근저에 ‘생애 주기의 과도한 의료화(Medicalization)’가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월경, 임신, 폐경과 같은 여성의 자연스러운 신체적 변화를 반드시 의학적 개입이 필요한 ‘질병’이나 ‘문제’로 규정함으로써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건강과 웰빙을 철저히 개인의 선택과 소비의 영역으로 격하시킨다. “적절한 제품을 구매하고 올바르게 소비하면 증상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는, 폐경 여성들이 겪는 고통의 사회적·보건적 맥락을 지우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공공 의료 시스템의 확충이나 구조적인 지원책 마련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
산드라 M.G. 등 보건 전문가들은 메노워싱에 맞서기 위해 ‘과학적 엄밀함’과 ‘공공의 역할’을 강조한다. 갱년기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반짝이는 마케팅으로 무장한 고가의 영양제가 아니라, 검증된 의학적 정보와 체계적인 의료 서비스다.
현재 시판되는 수많은 웰빙 솔루션 중 상당수는 엄격한 임상 시험을 거치지 않았으며, 대조군이 명확하지 않은 사례 연구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정부와 보건 당국은 갱년기 관련 제품의 허위·과장 광고를 철저히 감시하고, 소비자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 폐경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한 사회적 분위기는 고무적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많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잘 말하느냐’다. 폐경을 상업적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메노워싱을 경계하고, 이를 여성 건강권의 관점에서 다루어야 한다.
결국 메노워싱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폐경의 가시화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성들이 진정으로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외침이다.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보 제공과 공공 의료 시스템 내에서의 지원이 뒷받침될 때, 여성들은 마케팅의 노예가 아닌 자신의 신체적 변화를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는 진정한 ‘건강한 갱년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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