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지 토양의 ‘스펀지 기능’ 상실, 가뭄과 홍수의 주범이었다

고용철 기자

korocamia@naver.com | 2026-03-31 07:17:50

- 英 하퍼 애덤스 대학교 연구팀, ‘사이언스(Science)’지에 충격적 연구 결과 발표
- 광범위한 경작과 기계화로 토양 내 미세 ‘모세관’ 파괴… 수분 보유력 급감
- 광섬유 케이블 활용한 ‘농업 지진학(Agroseismology)’ 기법으로 토양 내부 실시간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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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식량 생산을 위해 수천 년간 지속해 온 전통적인 경작 방식이 오히려 지구의 수분 조절 능력을 파괴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기후 위기로 인한 극심한 가뭄과 홍수가 빈번해지는 가운데, 문제의 핵심이 하늘이 아닌 우리 발밑의 ‘토양 구조’에 있다는 분석이다.

현지 시각으로 지난 3월 19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된 연구 논문에 따르면, 전 세계 가용 지표면의 절반에 육박하는 농경지들이 심각한 ‘토양 압착’과 ‘구조적 파괴’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토양이 단순히 모래와 진흙의 집합체가 아니라, 식물 뿌리, 지렁이의 이동 통로, 미생물 활동으로 형성된 정교한 ‘미세 배관 시스템’을 갖춘 유기체라는 점에 주목했다. 정상적인 토양은 비가 올 때 이 구멍들을 통해 물을 깊숙이 흡수하여 저장하는 ‘스펀지’ 역할을 한다. 하지만 과도한 쟁기질(경운)과 무거운 농기계의 반복적인 이동은 이 미세한 통로들을 짓눌러 파괴한다. 결과적으로 비가 내려도 물은 지하 심층부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표면에 머물다 증발해 버리고, 뿌리가 뻗어있는 깊은 곳은 여전히 가뭄 상태에 머무는 ‘표면 침수-심층 건조’의 역설적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번 연구의 가장 혁신적인 지점은 인터넷용 광섬유 케이블을 토양 진단 도구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연구팀은 영국 Newport 인근 하퍼 애덤스 대학교(Harper Adams University) 실험 농장에 광섬유를 매설하고 ‘분산형 음향 감지(DAS)’ 기술을 적용했다.

이 기술은 지면의 미세한 진동이 광섬유를 통과하는 빛의 속도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는 방식이다. 토양에 수분이 함유되는 정도에 따라 지면의 진동 특성이 달라지는데, 이를 통해 토양을 직접 파헤치지 않고도 물이 내부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저장되는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연구팀은 이를 ‘농업 지진학(Agroseismology)’이라 명명했다.

측정 결과, 경작이 심하게 이루어진 토양에서는 빗물이 지표면 10~25cm 부근에 고여 있다가 태양열에 의해 빠르게 사라지는 반면, 경작을 최소화한 토양에서는 수분이 수직 통로를 따라 심층부까지 원활하게 이동하여 장기간 저장되는 것이 확인되었다.

논문의 주요 저자인 시(Shi) 박사는 토양의 수분 보유 메커니즘을 ‘잉크병 효과(Ink-bottle effect)’로 설명했다. 입구는 좁고 내부 공간은 넓은 모세관 구조가 유지될 때 수분은 쉽게 유입되고 증발은 억제된다.

하지만 인위적인 경작은 이러한 구조를 무너뜨려 토양의 탄성을 없애버린다. 흔히 땅을 갈아엎는 행위가 토양에 공기를 불어넣고 물길을 열어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정교한 수로를 끊어버려 토양의 ‘동적 모세관 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가뭄 시기에는 작물이 빨아들일 물이 없게 만들고, 폭우 시에는 물이 흡수되지 못하고 겉돌며 홍수 피해를 키우는 결정적 원인이 된다.

이번 연구 결과는 기후 변화 시대의 농업 경영에 중대한 시사점을 던진다. 단순히 어떤 품종을 심고 물을 얼마나 주느냐의 문제를 넘어, 토양의 구조적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이 곧 기후 적응의 핵심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무경운(No-till) 농법’이나 토양 압착을 최소화하는 정밀 농업의 확산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실시간 광섬유 모니터링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농민들은 자신의 토양이 물을 얼마나 잘 머금고 있는지, 어느 지점에서 압착이 발생했는지를 과학적으로 진단하여 대응할 수 있게 된다.

급변하는 기후 속에서 토양은 인류의 마지막 보루다. 이번 연구는 우리가 무심코 짓밟고 갈아엎었던 흙 한 줌의 구조가 지구 전체의 수순환을 결정짓는 핵심 열쇠임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토양의 ‘숨구멍’을 살리는 일, 그것이 바로 다가올 극단의 기후 시대를 대비하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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