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4,500만 달러의 징벌’... 그린피스 유죄 판결이 불러온 글로벌 사법 전쟁

고용철 기자 / 2026-03-03 04:00:43
-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DAPL) 시위 책임론 두고 미 법원 거액 배상 판결
- 환경단체 “기업의 전략적 봉쇄소송(SLAPP)” 반발... 유럽서 맞소송 전개
- 기후 위기 시대, 기업의 재산권과 시민의 표현의 자유 사이 ‘운명의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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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 역사상 유례없는 거액의 배상 판결이 내려지면서,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와 에너지 대기업 간의 법적 공방이 전 세계적인 ‘사법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미국 노스다코타 연방법원이 그린피스에 내린 3억 4,500만 달러(한화 약 4,600억 원)의 배상 판결은 단순히 한 단체의 존폐 문제를 넘어, 향후 기후 활동의 한계선을 결정지을 중대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10년 갈등의 정점: 스탠딩 록 시위와 3억 4,500만 달러의 판결
이번 사건의 뿌리는 10년 전인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스다코타주 스탠딩 록(Standing Rock) 지역에서는 수천 명의 환경 운동가와 원주민 부족이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DAPL) 건설에 반대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송유관이 원주민의 식수원을 오염시키고 성지를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송유관 운영사인 에너지 트랜스퍼(Energy Transfer)는 2017년, 그린피스가 이 시위를 주도하며 폭력을 선동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해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2025년 3월, 미 배심원단은 기업 측의 손을 들어주었고, 최근 법원은 3억 4,5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배상액을 최종 확정했다. 이는 단일 환경 운동 관련 배상액으로는 역사상 최대 규모다.

그린피스의 반격: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입막음 소송”
그린피스 측은 이번 판결에 즉각 반발하며 노스다코타 대법원에 항소할 뜻을 밝혔다. 이들의 핵심 논거는 이번 소송이 ‘전략적 봉쇄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이라는 점이다.

그린피스는 성명을 통해 “에너지 트랜스퍼의 목적은 피해 복구가 아니라, 거액의 소송비용과 배상금으로 비판 세력을 경제적으로 고사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재판 과정에서 피고 측에 유리한 증거는 배제된 채 선동적인 증거들만 채택되었으며, 배심원단의 구성 또한 편향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서양을 건넌 사법 공방: 유럽 ‘안티 슬랩(Anti-SLAPP)’ 규정의 시험대
주목할 점은 이번 전쟁터가 미국을 넘어 유럽으로 확장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린피스 인터내셔널은 최근 네덜란드 법원에 에너지 트랜스퍼를 상대로 맞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최근 유럽연합(EU)이 도입한 ‘반(反) SLAPP 지침’에 근거한 것으로, 기업이 비판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악의적인 소송을 남발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적 장치를 가동한 첫 사례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법조계는 이번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쉘(Shell)이나 토탈에너지스(TotalEnergies) 같은 에너지 거물들이 환경단체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들이 유럽 내에서는 기각되거나 철회되는 추세인 반면, 미국에서는 거액의 징벌적 배상이 인정되는 대조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 활동의 위축인가, 법치주의의 확립인가
이번 판결을 바라보는 시각은 극명하게 갈린다.

산업계 및 지지측: “표현의 자유가 불법 점거와 기물 파손, 그리고 기업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다”며 이번 판결이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환영한다.
시민사회 및 전문가 그룹: 공익 활동에 대한 억대 배상 판결이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가져와, 향후 기업의 환경 파괴에 대한 시민들의 감시 기능이 마비될 것을 우려한다.

향후 전망: ‘포스트-스탠딩 록’ 시대의 서
3억 4,500만 달러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그린피스 미국 지부는 파산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전 세계 환경 운동 네트워크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며, 활동가들은 이제 거리에서의 투쟁만큼이나 법정에서의 정교한 방어 전략을 고민해야 하는 시대에 직면했다.

결국 이번 사건은 ‘기업의 재산권 보호’와 ‘시민의 표현 및 집회의 자유’라는 민주주의의 두 핵심 가치가 충돌하는 지점에 서 있다. 노스다코타 대법원의 최종 판단과 네덜란드에서의 맞소송 결과는 향후 10년, 지구촌의 기후 정의가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지를 결정짓는 이정표가 될 것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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