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과학의 ‘지문’은 속일 수 없다… 벤저민 산터 교수, 美 에너지부 보고서 정면 반박

고용철 기자 / 2026-03-03 04:59:55
-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증거 명백해”
- 대기 수직 구조 변화 데이터 왜곡 비판, 학술적 검증 통해 오류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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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인류가 지구 기후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규명한 세계적 기후 과학자 벤저민 산터(Benjamin Santer) 교수가 미국 정부 보고서의 기후 데이터 왜곡에 대해 강력한 경고를 보냈다. 과학적 사실을 오도하는 보고서가 공식 채택되는 현상에 대해 기후 과학계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UEA) 명예교수인 산터 교수는 최근 미 에너지부(DoE)가 발행한 기후 과학 보고서가 자신의 연구를 잘못 인용했을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의 원인에서 인간의 기여도를 부정하는 ‘명백히 잘못된(demonstrably incorrect)’ 주장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7월 미 에너지부가 발표한 보고서였다. 해당 보고서가 발표된 날, 미 환경보호청(EPA)은 차량 및 산업 시설의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되었던 2009년의 ‘위험성 판정(Endangerment Finding)’을 뒤집는 제안을 발표했다.

산터 교수는 에너지부의 보고서가 이러한 규제 완화의 과학적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데이터를 짜맞추기식으로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월 해당 판정을 공식적으로 폐기하며 환경 규제 완화에 박차를 가한 바 있다.

산터 교수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의 수전 솔로몬 교수, 콜로라도 주립대의 데이비드 톰슨 교수 등 저명한 학자들과 함께 학술지 AGU Advances에 반박 논문을 게재했다. 이들은 대기 온도의 ‘수직 구조 변화’를 결정적 증거로 제시했다.

과학계에서 ‘기후 지문(Fingerprinting)’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대기층마다 온도가 다르게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류권(Troposphere)의 온난화: 지표면과 가까운 하층 대기는 온실가스 농도 증가로 인해 열이 갇히면서 온도가 상승한다.
성층권(Stratosphere)의 냉각: 반면 상층 대기인 성층권은 하층에서 올라오는 열이 차단되고, 온실가스가 자체적으로 열을 우주로 방출하며 오히려 차가워진다.

산터 교수는 “대류권의 가열과 성층권의 냉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패턴은 태양 활동의 변화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으며, 오직 인간이 배출한 CO2와 온실가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난 50년간 위성 데이터와 정밀한 기후 모델을 통해 입증된 ‘부인할 수 없는 증거’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오류가 입증된 보고서가 여전히 정부 공식 채택 자료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팀은 연방 자문위원회 절차 위반 혐의로 소송을 당해 지난해 9월 해산되었으나, 보고서 자체는 철회되거나 수정되지 않았다.

산터 교수는 “에너지부 웹사이트에는 여전히 이 보고서가 게시되어 있으며, 라이트(Wright) 에너지부 장관은 이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으로 계속 인용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공공 기관의 공식 보고서가 학술적 검토를 거치지 않은 왜곡된 주장을 전파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과학 발전에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했다.

이번 논란은 기후 변화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정치적 이해관계와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산터 교수는 과학적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 동료 검토(Peer-review) 문헌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며, 데이터에 기반한 진실 규명만이 기후 위기 대응의 올바른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후 과학계는 이번 산터 교수의 반박이 미 정부의 환경 정책 기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과학적 ‘지문’이 가리키는 범인이 명확한 상황에서, 이를 부정하려는 시도는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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