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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가장 희귀한 해양 조류로 꼽히는 ‘발레아레스 셔워터(Pardela balear)’가 거대한 풍력 발전기 날개 아래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스페인의 저명한 환경 단체인 SEO/BirdLife는 최근 프랑스 정부가 골프 드 리옹(Golfe du Lion) 해역에서 추진 중인 해상풍력 프로젝트 ‘나르보네즈 쉬드 에로(Narbonnaise Sud Hérault)’가 해당 종의 생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강력한 대응에 나섰다.
멸종 위기종의 마지막 보루를 침범하는 '그린 에너지'
발레아레스 셔워터는 스페인 발레아레스 제도에서만 번식하는 고유종으로, 현재 '심각한 위기(Critically Endangered)' 단계에 처해 있다. 이들은 번식기 동안 먹이를 구하기 위해 지중해 서부 해역을 광범위하게 이동하는데, 특히 프랑스 연안의 골프 드 리옹 서부 해역은 이들에게 핵심적인 채식지(Feeding ground) 역할을 한다.
SEO/BirdLife의 녹색 전환 부문 기술 전문가 폴 바르진코프스키(Paul Wawrzynkowski)는 "해상풍력 결정은 국가별 단위로 내려져서는 안 된다"며, "이 새들은 국경을 알지 못하며, 프랑스 해역에서의 서식지 파괴는 곧 스페인 번식지 집단의 붕괴로 직결된다"고 지적했다.
국경을 넘는 환경 갈등: '에스포 협약'에 따른 공조 요구
이번 사안은 단순한 환경 민원을 넘어 스페인과 프랑스 간의 외교적 환경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SEO/BirdLife는 '에스포(Espoo) 협약'과 유럽의 환경 영향 평가 규정에 의거하여, 국경을 넘나드는 생태적 영향을 정밀하게 조사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나르보네즈 1·2' 프로젝트가 계획된 구역은 유럽 연합의 자연 보호 네트워크인 '나투라 2000(Natura 2000)' 지정 구역과 겹친다. 이곳은 큰돌고래와 붉은바다거북의 서식지일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의 일부가 프랑스 골프 드 리옹 해양 천연기념물 공원 경계 내부로 침입하고 있어 생태계 교란 우려가 가중되고 있다.
수천만 마리의 새들이 지나는 '공중 고속도로' 차단 위기
가장 큰 기술적 우려는 '장벽 효과(Barrier effect)'와 충돌 사고다. 프랑스 공공기관이 수행한 'MIGRALION(2021-2025)' 연구에 따르면, 해당 해안선에서 50km 이내의 구간은 매 시즌 수천만 마리의 조류가 통과하는 북서 지중해 최대의 이동 경로다.
여기에 거대한 부유식 풍력 발전기와 변전소, 야간 조명, 선박 통행량 증가는 조류들에게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에너지 손실: 발전 단지를 피하기 위해 경로를 우회하면서 번식에 필요한 에너지를 과도하게 소모함.
충돌 위험: 회전하는 블레이드와의 직접 충돌 및 야간 조명에 의한 시야 방해.
서식지 상실: 핵심 채식지의 기능적 상실로 인한 번식 성공률 저하.
"신중함 없는 전환은 또 다른 재앙"
SEO/BirdLife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재생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과학적 근거'와 '예방적 원칙'이 결여된 무분별한 개발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스페인 정부가 프랑스 측에 보다 엄격하고 독립적인 영향 평가를 요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지중해는 지도상의 추상적인 공간이 아닙니다. 스페인에서만 둥지를 트는 희귀종의 생명선입니다." 바르진코프스키의 일갈은 탄소 중립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가 놓치고 있는 생물 다양성의 가치를 다시금 되묻게 한다.
친환경 에너지가 진정으로 '친환경'이 되기 위해서는, 거대한 바람개비가 돌아가기 전 그 바람을 타고 대를 이어온 생명들의 길을 먼저 살펴야 할 시점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