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심은 휴경지가 농토를 살린다"… 2년 만에 생물다양성 2배로

고용철 기자 / 2026-03-12 20:14:51
- 글로벌 네이처 재단(FGN), 스페인 5개 주 농지 실증 연구 결과 발표
- '파종 휴경' 시 곤충·조류 급증, 토양 건강성 100% 이상 향상
- 유럽 복원법 대응 및 지속 가능한 농업의 새로운 이정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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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농사법을 바꾸는 것만으로 황폐해진 농토의 생명력을 되살릴 수 있을까? 최근 스페인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답은 명확한 '예스(Yes)'다. 농한기 휴경지에 꽃과 야생 식물을 심는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불과 2년 만에 벌과 나비 등 화분 매개 곤충이 두 배로 늘어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스페인의 환경 보전 기관인 '글로벌 네이처 재단(Fundación Global Nature, 이하 FGN)'은 지난 2025년 한 해 동안 쿠엔카, 과달라하라, 테루엘, 바야돌리드, 바다호스 등 5개 주에 걸쳐 총 35개의 농업 필지를 정밀 모니터링했다. 연구팀은 자동 음향 기록 장치를 통한 조류 관찰, 곤충 식별을 위한 DNA 분석, 토양 미생물 건강도 측정 등 다각적인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했다.

연구 결과는 가히 독보적이었다. 꽃과 레구미노사(콩과 식물)를 파종한 휴경지는 기존의 관행적인 곡물 재배 방식과 비교했을 때 화분 매개 곤충의 종 풍부도가 3배 이상 증가했다. 또한, 해충을 자연적으로 방제하는 '천적 곤충'의 개체 수도 2배가량 늘어났으며, 토양의 생물학적 질은 100% 이상의 개선 효과를 보였다.

FGN의 농업 및 생물다양성 책임자인 조르디 도밍고(Jordi Domingo)는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남아있는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주력해 왔으나, 이제는 이미 훼손된 곳에서 새로운 생물다양성을 창조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며, "적절한 환경만 조성된다면 자연은 놀라운 속도로 응답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총 8가지의 서로 다른 농업 관행을 비교 분석했다. 그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꼽힌 것은 '파종 휴경'이다. 이는 땅을 쉬게 하는 동안 경운(땅갈이)을 하지 않고 화학 약품도 사용하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꽃과 콩과 식물을 심어 2년 동안 유지하는 방식이다. 이 기법을 적용했을 때 생물다양성은 관행 농법 대비 약 75% 증가했다.

반면, 인위적인 파종 없이 자연적으로 풀이 자라도록 내버려 둔 일반 휴경지의 경우 생물다양성 개선 폭이 40%에 그쳐, 전략적인 식재의 중요성을 뒷받침했다.

또한 연구팀은 토마토 재배지에서 화학 살충제의 절반을 유기농 제품으로 대체하고 작물 사이에 꽃을 심는 실험도 병행했다. 그 결과 생물다양성은 21%, 유익 곤충의 활동은 59%나 급증했다. 이는 단순히 화학 투입재를 줄이는 것을 넘어,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생태적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임을 시사한다.

생태계의 복원은 지표면 아래와 위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토양 속에서는 진드기, 톡토기, 노래기 등 미세 생물군이 급증하며 토양의 탄소 저장 능력을 높이고 침식을 방지하는 파수꾼 역할을 자처했다.

지상에서는 멸종위기종인 '종다리(Alondra común)'를 비롯한 초원 조류들이 돌아왔다. 2021년 스페인 조류 레드북에서 '취약' 등급으로 분류된 종다리는 이번 연구의 모든 파종 휴경지에서 그 울음소리가 포착되었다. 농업 집약화로 인해 지난 수십 년간 개체 수가 30% 이상 급감했던 초원 조류들에게 휴경지가 최적의 서식처가 되어준 것이다.

벌, 딱정벌레, 나비는 물론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하는 이주성 박각시나방(Hyles livornica)의 출현도 관찰되었다. 도밍고 책임자는 "이러한 곤충의 증가는 환경 보호를 넘어 농업 생산성에도 직결된다"며 "아몬드, 해바라기, 콩과 식물 등 화분 매개 의존도가 높은 작물의 수확량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 결과는 유럽연합(EU)의 '자연복원법(Nature Restoration Law)' 시행과 맞물려 정책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해당 법안은 2030년까지 각 회원국이 농업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가시적으로 회복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스페인은 초원 나비 지수, 농지 탄소 저장량, 농경지 내 생태 요소(울타리, 휴경지 등) 중 최소 두 가지 이상의 지표를 개선해야 한다.

FGN이 개발한 '농업 경관 생물다양성 이익 산출법(Calculation of Biodiversity Gains in Agrarian Landscapes)'은 이러한 성과를 수치로 증명하는 강력한 도구가 될 전망이다. 스페인 정부는 2026년까지 '국가 복원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상황에서, 본 연구가 제시한 '파종 휴경' 모델을 핵심 전략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농가 입장에서도 실익이 크다. 생물다양성 개선 성과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게 되면, 유럽 공동농업정책(CAP)에 따른 공적 지원금 확보는 물론 친환경 시장에서의 경쟁력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농지의 생태적 회복은 단순한 환경 운동이 아닌, 기후 위기 시대에 농업의 생존을 담보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꽃을 심고 땅을 기다려주는 2년의 시간이 우리 식탁을 지탱하는 벌과 나비, 그리고 살아있는 토양을 되살려냈다.

FGN의 이번 실증 연구는 "자연과 농업은 대립 관계가 아닌 공생 관계"라는 오래된 진리를 과학적 데이터로 증명하며, 스페인 농업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예고하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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