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스를 넘은 천년의 울림: 프리인카 시대 아마존 로로(Loro) 교역의 비밀을 풀다

고용철 기자 / 2026-03-12 20:18:29
- 서기 1000년경, 해안 사막과 열대 우림을 잇는 거대 물류망 확인
- DNA 및 이소토프 분석을 통해 밝혀진 선사시대 남미의 초연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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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의 야생과 태평양의 사막, 그리고 그 사이를 가로막은 거대한 안데스 산맥. 오늘날의 첨단 물류 시스템으로도 정복하기 쉽지 않은 이 지리적 장벽이 이미 수백 년 전, 잉카 제국이 발흥하기 훨씬 이전부터 인위적으로 극복되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스페인 사라고사 대학교(Unizar)와 호주 국립대학교(ANU)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 연구진은 최근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기원후 1000년에서 1470년 사이 페루 연안 지역에 거주했던 고대 사회가 아마존 열대우림에서 서식하는 앵무새(Loro)들을 산 채로 운송해왔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했다.

고대 DNA와 이소토프가 들려주는 증거
이번 연구의 핵심은 페루 파차카막(Pachacámac) 유적에서 발견된 이치스마(Ychsma) 문화기의 깃발과 장식용 깃털들에 대한 다각도 분석이다. 연구진은 고대 DNA(aDNA) 분석을 통해 이 깃털들이 현지 종이 아닌,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아마존 저지대에 서식하는 스칼렛 마코(Ara macao), 청금강앵무(Ara ararauna) 등 네 종류의 열대 조류임을 확인했다.

단순히 깃털만 거래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동위원소(Isotope)' 분석에서 드러났다. 분석 결과, 이 새들의 체내에는 아마존의 야생 식물이 아닌 해안가에서 재배된 옥수수와 바다 새의 배설물인 구아노(Guano) 성분이 다량 검출되었다. 이는 새들이 포획된 후 안데스 산맥을 넘어 해안 지대에 도착해 상당 기간 생존하며 현지 음식을 섭취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안데스를 넘는 불가능한 물류의 실현
아마존 앵무새는 지능이 높고 공격적이며, 무엇보다 기후 변화에 극도로 취약한 종이다. 습한 열대우림에서 태어난 새들을 해발 4,000미터 이상의 척박하고 추운 안데스 고개를 넘어 건조한 해안 사막까지 이동시키는 것은 현대적 관점에서도 경이로운 물류적 도전이다.

연구에 참여한 페드로 보베르 아르보스(Pedro Bover Arbos) 박사는 "상인들은 수 주에 걸친 여정 동안 이 예민한 새들을 추위로부터 보호하고 적절한 먹이를 공급할 수 있는 고도의 생태학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는 당시 사회가 단순히 파편화된 부족 사회가 아니라, 체계적인 운송 경로와 숙련된 전문가 집단을 갖춘 고도의 네트워크 사회였음을 시사한다. 

'잉카 이전'에 이미 존재했던 거대 경제권
그동안 역사학계에서는 안데스 지역의 복잡한 도로망과 물류 체계가 잉카 제국 시기에 완성된 것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이번 발견은 이치스마(Ychsma)나 치무(Chimú) 같은 프리인카(Pre-Inca) 사회가 이미 아마존의 생물다양성과 해안의 경제력을 잇는 정교한 교역로를 운영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발견된 화려한 청색과 녹색의 깃털들은 당시 엘리트 계층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식품이나 제의용 도구로 사용되었다. 이 '사치품'을 조달하기 위한 열망이 지리적 한계를 뛰어넘는 초광역 경제권을 형성하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보존과 역사적 교훈
이번 연구는 고대의 유기물 질료, 특히 부식되기 쉬운 깃털에서 성공적으로 DNA를 추출해냈다는 점에서 고고학계의 큰 성과로 평가받는다. 또한, 유전적 다양성 분석을 통해 이 새들이 가두리 양식(Captivity breeding)이 아닌 야생에서 직접 포획되었다는 점을 밝혀내어 당시의 야생 동물 채취 규모를 짐작게 한다.

천 년 전 안데스를 넘었던 앵무새들의 긴 여정은 인간의 욕망과 지혜가 어떻게 자연의 경계를 허물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고대 교역의 역사는 오늘날 멸종 위기에 처한 아마존 생태계 보존 문제와 맞물려 우리에게 새로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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