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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불안정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유기농업이 유럽연합(EU)의 식량 안보를 강화하고 에너지 및 자원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등 주요 물류 거점의 긴장 상태는 외부 의존도가 높은 유럽 식량 체계의 취약성을 여실히 드러냈으며, 이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유기농 모델의 확산이 거론되고 있다.
유기농업이 유럽 식량 안보의 보루로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수입산 화학비료와 에너지에 대한 의존도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관행 농업은 천연가스와 석유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화학비료에 크게 의존한다. 이는 에너지 가격 변동이나 국제 정세에 따라 농업 생산비가 요동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유기농 모델은 토양의 건강을 우선시하며 작물 순환(윤작), 천연 비료 사용, 토양 비옥도 개선 등 자연 친화적 방식을 채택한다. 이러한 방식은 외부 투입물을 최소화함으로써 글로벌 시장의 휘발성에 노출되는 위험을 줄이고, 농업 시스템의 자립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팬데믹과 물류 대란을 거치며 유기농업의 ‘공급망 회복탄력성’ 또한 증명되었다. 유기농 공급망은 대개 생산지와 소비지가 인접한 지역 기반의 유통 구조를 가진다. 이러한 ‘짧은 유통 경로’는 국제적인 물류 중단 사태 속에서도 안정적인 식량 공급을 가능케 했으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결국 유기농업은 단순히 환경 보호 차원을 넘어, 글로벌 위기 시에도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식량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유럽연합은 최근 ‘전략적 자립(Strategic Autonomy)’을 정책의 핵심 기조로 내세우고 있다. 식량 분야에서 이는 제3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역내 생산 역량을 강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유기농업은 현지의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지속 가능한 생산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유럽이 스스로 식량 주권을 지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
전문가들은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가 상존하는 ‘뉴 노멀’ 시대에 유기농으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유기농업의 성장이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유기농 모델이 유럽 식량 체계의 주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특히 유럽 공동농업정책(PAC)을 통한 실질적인 금융 지원과 인센티브가 관건이다.
일각에서는 현재의 정책적 지원이 충분하지 않으며, 특히 ‘불퇴전의 원칙(Principle of no regression, 환경 수준을 후퇴시키지 않는 원칙)’의 부재가 유기농 산업의 확산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유럽 위원회가 '지속 가능한 식량 시스템(FSFS)' 프레임워크 추진을 주춤하는 모습을 보인 것 역시 농업 혁신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유기농업이 유럽의 식량 안보를 강화한다는 사실은 이제 환경적 논의를 넘어 경제적, 지정학적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 시장에서 자국 및 역내 자원을 활용한 회복력 있는 농업 모델을 구축하는 것은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사안이다.
유럽이 진정한 식량 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유기농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정책적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시스템으로의 전환은 단순히 지구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위기 속에서 유럽의 밥상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가 될 것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