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수 밀리미터 자라는 '마엘' 등 취약 생태계 붕괴 위기… "과학적 감시와 실질적 집행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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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발레아레스 제도의 카브레라 해상-지상 국립공원(Parque Nacional Marítimo-Terrestre del Archipiélago de Cabrera)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 지중해에서 가장 잘 보존된 해양 생태계 중 하나로 꼽히는 이곳이 인간의 활동과 기후 변화라는 이중고 속에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환경 단체와 전문가들은 현재의 보호 수준으로는 카브레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고 경고하며, ‘노-테이크(No-take, 어업 금지)’ 구역의 획기적인 확대를 촉구하고 나섰다.
카브레라 해저에는 수천 년의 시간이 응축된 복잡하고 섬세한 생태계가 펼쳐져 있다. 특히 이곳의 핵심 서식지인 매얼(maërl, 석회조류) 지대는 연간 성장 속도가 수 밀리미터에 불과하다. 이는 단 한 번의 물리적 충격이나 무분별한 채취가 발생할 경우, 이를 복구하는 데 수 세대, 혹은 수백 년의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또한, 해양 생물의 안식처 역할을 하는 산호초와 고르고니아(수지산호류) 군락 역시 매우 민감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비록 저강도의 추출 활동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축적되는 '누적적 충격'이 생태계의 복원력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임계점에 도달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해양 환경 재단 '마릴레스(Fundación Marilles)'는 최근 제출한 카브레라 국립공원 관리 및 사용 계획(PRUG)에 대한 의견서에서 현재의 관리 모델이 실제 환경의 필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카브레라 국립공원은 약 9만 헥타르 이상의 해역을 포함하고 있으나, 인간의 간섭이 완전히 배제된 '최대 보호 구역'의 면적은 전체 대비 현저히 낮은 실정이다. 마릴레스 재단은 생물 다양성이 특히 풍부한 '포르 덴 모레우(Fort d’en Moreu)' 주변 해역 등을 포함해 어업 금지 구역을 현재보다 10~12배가량 확대할 것을 강력히 제안했다. 이는 단순히 공간을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생태적 가치가 높은 지점에 보호 역량을 집중하여 '씨앗 효과(spillover effect)'를 극대화하려는 전략이다.
이번 보호 확대 요구의 핵심 논거 중 하나는 ‘생태적 연결성(Ecological Connectivity)’이다. 해양 생태계는 고립된 섬이 아니라 조류, 치어의 분산, 종의 이동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된 네트워크다. 카브레라와 마요르카 해협 사이의 연결고리가 약화되면, 설령 국립공원 내부를 잘 관리하더라도 생태계 전체의 회복력은 저하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원의 경계 안쪽뿐만 아니라 주변 해역과의 기능적 단위로서의 통합 관리가 필수적이다.
보호 구역의 지정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감시와 데이터 기반의 관리다. 문서상으로만 존재하는 보호 구역은 불법 조업(furtivismo)의 위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지속적인 과학적 모니터링 없이는 생태계의 변화를 감지하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예방적 관리가 아닌 사후 약방문식의 대응에 그치게 된다. 과학계는 감시 인력과 장비의 보충, 그리고 실시간 데이터 수집 체계 구축이 보호 구역 확대와 병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카브레라의 해저 지형은 인간의 파괴 속도에 비해 턱없이 느린 재생 속도를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보호 수준은 유지(Preservation)에만 급급할 뿐, 적극적인 복원과 대비(Anticipation)에는 역부족"이라고 평가한다.
지중해의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것은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지역의 수산 자원 회복과 기후 변화 대응력을 높이는 중대한 투자다. 카브레라를 진정한 의미의 해양 안식처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대담한 정책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