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에 오렌지색 많은 이유 유전학적 입증… 질환 연관성 연구로 확대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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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애묘가들 사이에서 ‘미스터리’로 통했던 오렌지색 고양이(일명 치즈 태비)의 유전적 발생 기전이 마침내 밝혀졌다. 특히 오렌지색 고양이 중 유독 수컷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와 이 유전 변이가 고양이의 건강에 미칠 잠재적 영향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제시되어 학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5.1kb의 실종'이 만든 오렌지색의 마법
지난 2025년 5월 국제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에 게재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본과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팀은 독립적인 연구를 통해 오렌지색 털을 가진 고양이들의 공통된 유전적 특징을 발견했다. 핵심은 X염색체에 위치한 ‘ARHGAP36’ 유전자 인근에서 발견된 5.1킬로베이스(kb) 크기의 DNA 결손이다.
연구진은 총 67마리의 고양이를 대상으로 정밀 유전자 분석을 실시했다. 그 결과, 오렌지색 털을 가진 모든 고양이에게서 이 특정 DNA 조절 부위가 삭제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상관관계는 100%에 달했다. 유전학에서 특정 형질과 변이가 이토록 완벽하게 일치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간주된다.
암 치료 연구되던 유전자가 털 색깔 결정해
이번 발견이 더욱 놀라운 점은 ‘ARHGAP36’ 유전자의 기존 역할 때문이다. 본래 이 유전자는 색소 형성과는 무관하게 세포의 발달이나 암세포의 증식 등 생물학적 핵심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연구팀은 유전자 본체가 아닌 ‘비코딩(non-coding)’ 영역의 조절 부위가 사라지면서, 피부 세포에서 이 유전자가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본래 작동하지 않아야 할 피부에서 유전자가 켜지자, 검은색이나 갈색을 만드는 ‘유멜라닌’ 합성이 억제되고 붉은색이나 오렌지색을 만드는 ‘페오멜라닌’ 합성이 촉진된 것이다.
연구를 주도한 사사키 박사는 “단백질 자체가 변했다면 치명적인 유전병이 되었겠지만, 특정 부위에서만 유전자가 켜지도록 조절 부위가 변했기에 고양이들이 건강을 유지하면서도 독특한 오렌지색 털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 오렌지색 고양이는 대부분 수컷인가?
이번 연구는 ‘치즈냥이 5마리 중 4마리는 수컷’이라는 속설에 종지부를 찍었다. 비밀은 성염색체인 X염색체에 있다. 수컷은 XY 염색체를 가지므로, 오렌지색 변이가 있는 X염색체 하나만 물려받아도 몸 전체가 오렌지색이 된다.
반면 XX 염색체를 가진 암컷이 완전히 오렌지색이 되려면 부모 양쪽으로부터 변이된 X염색체를 모두 물려받아야 한다. 만약 하나의 X염색체에만 변이가 있다면, 배아 발달 과정에서 일어나는 ‘X염색체 불활성화’ 현상에 의해 오렌지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카오스(Tortoiseshell)’ 혹은 ‘삼색(Calico)’ 무늬가 나타나게 된다.
성격과 건강, 그리고 남겨진 과제
항간에는 오렌지색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에 비해 더 활발하거나 ‘말썽꾸러기’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오로지 ‘색상’과 ‘패턴’에 관한 것일 뿐, 성격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오렌지색 고양이의 대다수가 수컷이기 때문에, 수컷 특유의 활동성이 성격적 특징으로 오인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스탠퍼드 대학의 크리스토퍼 케일린 박사는 “피부 외의 다른 조직에서는 ARHGAP36 유전자의 비정상적 활성화가 관찰되지 않았으나, 아직 분석하지 못한 조직에서의 미세한 영향까지는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는 오렌지색 고양이를 키우는 반려인들에게 당장 걱정할 사안은 아니지만, 향후 이 변이가 다른 질환과 연관될 가능성에 대한 후속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는 반려동물의 진화와 유전적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으며, 향후 포유류의 색소 형성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기초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