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 살충제 대체할 ‘천연 비생식적 조절’ 시대 개막… 지속 가능한 농업의 새로운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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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수천 년간 지속해 온 농업 현장에서 ‘바이러스’는 통상 박멸해야 할 질병의 원인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스페인에서 발표된 한 연구 결과는 이러한 상식을 뒤엎고, 바이러스를 농작물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아군’으로 재정의하며 학계와 농업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스페인 코르도바 대학교(University of Córdoba) 농업 엔토몰로지(곤충학) 연구팀은 최근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비룰런스(Virulence)’를 통해, 특정 바이러스가 곰팡이의 살충 능력을 극대화하는 결정적 요인이라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입증했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곰팡이에 감염되는 바이러스인 이른바 ‘미코바이러스(Mycovirus)’에 있다. 연구팀은 전 세계적으로 유기농법 및 생물학적 방제에 널리 쓰이는 살충 곰팡이인 ‘보베리아 바시아나(Beauveria bassiana)’를 대상으로 비교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동일한 균주 내에서 미코바이러스가 존재하는 자연 상태의 곰팡이와, 인위적으로 바이러스를 제거한 곰팡이를 분리하여 해충에 노출시켰다.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바이러스 보유 곰팡이: 해충에 침투하여 강력한 독성을 발휘, 단시간 내에 숙주를 사멸시켰다.
바이러스 제거 곰팡이: 해충에 대한 병원성을 거의 상실하여 사실상 살충 효과를 내지 못했다.
이는 그동안 곰팡이 자체의 특성으로만 여겨졌던 살충 능력이 사실은 그 안에 서식하는 바이러스와의 ‘공생 관계’에서 기인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즉, 미코바이러스가 곰팡이의 유전적 발현을 조절하여 해충을 공격하는 ‘생물학적 증폭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발견이 농업 현장에 가져올 변화는 혁명적이다. 현재 전 세계 농업은 화학 살충제 남용으로 인한 토양 오염과 생태계 파괴, 그리고 내성을 가진 ‘슈퍼 해충’의 등장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유전자 변형 생물(GMO)이 제시되기도 했으나, 여전히 안전성과 윤리적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미코바이러스를 활용한 기술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최적화’를 지향한다. 인위적인 유전자 조작 없이도 자연에 존재하는 바이러스와 곰팡이의 관계를 조절함으로써, 해충 방제 효율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이 메커니즘은 곰팡이가 다양한 환경 조건에 더 잘 적응하게 하고, 해충 사이에서 더 빠르게 전파되도록 돕는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미코바이러스에 감염된 곰팡이가 단순히 해충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작물의 전반적인 생육 환경을 개선하는 ‘멀티 플레이어’ 역할을 한다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보베리아 바시아나와 같은 내생 곰팡이는 식물 체내에 머물며 다음과 같은 부수적 효과를 제공한다.
식물 생장 촉진: 뿌리 발달 및 영양분 흡수 효율 증가.
환경 스트레스 저항성: 가뭄이나 고염분 등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방어력 강화.
복합 병해 예방: 다른 식물 병원균의 침입을 억제하는 면역력 강화.
미코바이러스는 이러한 곰팡이의 긍정적인 기능들 또한 증폭시킬 가능성이 크며, 이는 작물의 생산성 향상으로 직결될 수 있다.
이번 연구는 바이러스를 바라보는 인류의 시각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바이러스가 통제의 대상이었다면, 미래의 바이러스는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고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코르도바 대학교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바이러스를 적이 아닌 보이지 않는 동맹군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과학적 이정표”라며, “기존 화학 제품보다 훨씬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생물학적 방제 솔루션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기후 위기와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 안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2026년 현재, 자연의 지혜를 빌린 이번 ‘미코바이러스 혁명’이 전 세계 농업 지형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