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테리아 유전자 수평 이동을 통한 진화적 산물… 영하 2도에서도 물 얼려
- 인공강우 효율 증대 및 세포 저온 보존 등 다각도 활용 가능성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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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영하의 온도에서도 얼지 않고 액체 상태를 유지하는 ‘과냉각(Supercooling)’ 현상을 깨뜨리고, 고온에서도 물을 얼음으로 변모시키는 특수한 곰팡이 단백질이 발견되어 학계와 산업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0도에서 얼지 않는 물의 비밀과 ‘얼음 씨앗’
통상적으로 물은 섭씨 0도에서 얼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물리적 관점에서의 결빙은 단순히 온도 저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액체 상태의 물 분자들이 정렬되어 고체 결정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핵(Nucleus)’ 역할을 할 씨앗이 필요하다.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물의 경우, 영하 46도에 이를 때까지 얼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를 방지하고 결빙을 촉진하는 물질을 ‘빙핵 형성 물질(Ice Nucleators)’이라 부른다.
자연계에서는 먼지나 광물 입자가 이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최근 국제 공동 연구진은 토양 속 곰팡이에서 발견된 특정 단백질이 기존의 어떤 광물보다 강력한 결빙 촉진 효과를 지니고 있음을 밝혀냈다.
모르티에렐라 곰팡이, 영하 2도의 기적을 만들다
학술지 보고에 따르면, 연구진은 토양에 흔히 서식하는 곰팡이류인 **모르티에렐라과(Mortierellaceae)**의 균사에서 추출한 수용성 단백질이 물방울을 영하 5.6도에서 7.5도 사이에서 결빙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이 중 가장 효율이 높은 단백질 변이는 이론적으로 영하 2도에 근접한 온도에서도 얼음 결정을 형성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발견이 기존의 빙핵 형성 박테리아(예: Pseudomonas syringae)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단백질의 구조적 유연성에 있다. 기존 박테리아 유래 단백질은 세포막에 결합된 형태여서 세포 전체를 사용해야 하는 제약이 있었으나, 이번에 발견된 곰팡이 단백질은 세포막과 독립된 수용성 단백질 형태다. 이는 향후 고순도 단백질만을 정제하여 산업적으로 활용하기에 훨씬 용이한 조건임을 시사한다.
수백만 년 전 박테리아로부터 이어진 ‘유전적 도약’
연구의 공동 저자인 보리스 비나처(Boris Vinatzer)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흥미로운 진화적 사실을 공개했다. 해당 곰팡이의 결빙 유전자가 과거 박테리아의 결빙 관련 유전자인 ‘InaZ’를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을 통해 습득했다는 점이다.
비나처 교수는 “곰팡이가 박테리아로부터 유전자를 획득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으나, 결빙 유전자를 받아들여 수백만 년 동안 독자적으로 정교하게 발전시켜 왔다는 점은 매우 놀라운 발견”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생명체가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 종의 생존 도구를 어떻게 재활용하고 최적화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인공강우의 안전성과 효율성 제고
이번 연구 결과가 가장 즉각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분야는 **인공강우(Cloud Seeding)**다. 현재 인공강우에는 주로 요오드화은(Silver Iodide)이 사용되는데, 이는 약 영하 5도 부근에서 결빙을 유도한다. 새로 발견된 곰팡이 단백질을 활용할 경우 더 높은 온도에서도 효과적인 빙핵 형성이 가능해져 강우 확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러한 기술적 진보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인공강우가 국지적인 가뭄 해갈에는 도움을 줄 수 있으나, 대규모 기후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조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새로운 생물학적 단백질을 대기 중에 살포하기에 앞서 생태계 및 인체에 미칠 영향에 대한 철저한 환경 평가가 선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냉동 식품에서 바이오 의학까지, 무궁무진한 활용처
곰팡이 유래 결빙 단백질의 활용 범위는 하늘 위뿐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광범위하다.
세포 및 장기 저온 보존: 급격한 결빙으로 인한 대형 얼음 결정은 세포막을 파괴한다. 미세한 빙핵 형성을 제어함으로써 세포 손상을 최소화하는 정밀한 냉동 보존 기술이 가능해진다.
식품 산업: 냉동식품 및 아이스크림 제조 시 얼음 결정의 크기를 조절하여 텍스처(식감)를 개선하고 유통 과정에서의 품질 유지력을 높일 수 있다.
기후 모델 정교화: 대기 중 미생물이 구름 형성과 복사 에너지 반사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함으로써 더욱 정밀한 기후 예측 모델 구축이 가능해진다.
향후 과제: 대량 생산과 안전성 검증
연구팀은 이번 발견이 실질적인 상업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저비용 대량 생산 공정의 확립이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실제 야외 환경에서의 효능 검증과 더불어 생물학적 안전성에 대한 다각도의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곰팡이 결빙 단백질의 발견은 단순한 생물학적 성과를 넘어 기상 조절과 바이오 기술의 융합을 이끄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자연이 수백만 년에 걸쳐 연마한 ‘얼음 형성 기술’이 인류의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