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근로자 무서워서 근무 꺼려진다

김영민 기자 / 2015-12-16 16:03:30
엠코테크놀로지코리아 여성노동자 사망 업무상재해 신청
ATK 다수 피해자 있고, 올해에만 벌써 여섯 번째 사망 발생
근로복지공단 서울성동지사 재활보상부장 상식이하 태도 분통

[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 반도체 조립사업장인 엠코테크놀로지코리아(주)에서 28년간, 주야간 교대제로 근무한 여성근로자가 유방암으로 사망했다.

고 이미자(만 46세)는 18세인 1987년 엠코테크놀로지코리아(주)에 입사 유방암 발병시까지는 22년(만 40세), 퇴직시까지는(2015년 9월) 28년을 반도체 생산라인인 서울 성수공장 및 광주공장에서 반도체 조립라인(패키징 라인) 칩 절단공정(SAW) 등을 일했다.

2009년 만40세의 나이로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오랜기간 투병했으나 전이 및 악화 등으로 2015년 11월 27일 사망(만 46세) 했다.

엠코테크놀로지코리아(주)(ATK, 엠코코리아, 구 아남반도체)는 한국의 서울 성수동과 인천, 광주에 공장을 두고 전자집적회로 제조업을 하는 사업장이다.

ATK 여성노동자의 죽음은 현 시대 반도체 산업의 위험성을 보여주고 있다.

반도체는 다양한 화학물질이 사용되는 최첨단산업이다. 반도체 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유방암의 위험에 관한 각종 연구문헌에 따르면 유방암과 반도 체 산업은 관련성이 높다고 결론짓고 있다.

▲ © 환경데일리

비교적 최근의 연구로 2007년 대만에서 진행된 전자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코호트연구에서는 유기용제에 대한 규제가 시작되기 이전 어린나이에 입사해 오랜기간 동안 일한 여성노동자들이 높은 유방암 발병을 보임이 확인되기도 했다. 고인 역시 반도체 산업에서 20년이 넘게 일한 여성노동자이고, 유기용제나 다른 화학물질에 노출된 노동자였다.

ATK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수백종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포름알데히드(1급 발암물질)와 벤젠(1급 발암물질), Carbon black(2급 발암물질), Titanium dioxide(2급 발암물질)등을 함유하고 있는 너무나 많은 물질들이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금속으로는 베릴륨(1급 발암물질) 등이 사용되기도 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사용하는 물질의 구체적인 정보 MSDS가 확인된 것은 처음이기도 하다.

반도체의 생산공정 특성상 반도체 칩을 오븐에 굽는 등 고온작업이 작업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유해물질들이 고온에서 분해돼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 ,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PAHs), 내지 브롬계난연제(PBBs, PBDE 등) 등의 형태로 작업자들의 건강에 영향 미칠 수 밖에 없다.

한편, 반도체 생산공장은 보통 주야간 교대근무제로 공장을 운영한다. 교대근무로 밤 시간에 빛에 노출이 되면 생체리듬이 파괴되고, 암 발생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생성이 줄어드는 등 호르몬 교란을 가져와 암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에 기초해 주야간 교대근무는 국제암연구소(IARC)가 인정하는 유력한 발암물질로, 국제 사례 1주일에 한번이상 20년에서 30년 야간근무를 했던 여성노동자에게 발생한 유방암을 직업병으로 인정한 덴마크 사례가 있다.

고인의 경우 유방암 발병 까지는 22년간, 이후 퇴직 시 까지는 28년간이나 주야간 교대근무를 했다. 따라서 유방암 발병에 주야간 교대근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됐거나 악화에 유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전국금속노동조합법률원과 반올림은 고 이미자씨의 유방암 발병 및 죽음이 반도체 산업에서의 유해요인들로 인해 발생했고,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는 내용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청구를 12월14일 근로복지공단 서울성동지사에 제출했다.

다만 근로복지공단 서울성동지사는 이러한 산재신청에 대해 접수단계부터 황당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14일 서류 접수때 근로복지공단 서울성동지사 재활보상부장은 "접수증 발급은 내년에나 가능하다"며 "제출 서류량이 많은데 이걸 다 어떻게 보냐. 5장으로 요약해오라, 영어로 된 자료는 번역해와라"는 등 입증자료로 제출한 회사의 물질안전 보건자료(MSDS) 원문이 영어로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식이하의 태도를 보여 분통을 터뜨렸다.

반올림측은 노동조합과 단체가 함께 제기하는 사건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데 하물며 개별 재해노동자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찾을 경우 얼마나 큰 어려움을 겪겠는가고 허탈감을 표출했다.

산재신청을 고인은 물론 ATK에도 다수의 피해자가 있고, 올해에만 벌써 여섯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상태다.

그동안 반도체산업 노동자들의 백혈병과 암, 생식질환 등 직업병 문제는 삼성반도체와 하이닉스반도체를 중심으로 논의가 집중돼 왔다.

문제는 삼성 반도체 등보다도 더 열악한 작업환경과 작업조건에서 반도체 제조 작업장이 많다는 점에 더 주목할 필요성도 나오고 있다. 그 중 한 곳이 ATK다.

ATK의 경우 제보로 확인된 경우만도 백혈병, 뇌종양, 폐암, 유방암, 췌장암, 난소암 등으로 세상을 떠난 노동자가 18건에 달하고, 2005년 고인까지 포함 6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철저한 원인규명과 근본대책을 마련하는 사회적 논의가 신속하게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다.

반올림측은 이번 신청을 계기로 ATK 소속 노동자 중 희귀 질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과 유족, 반도체 산업을 비롯한 원인도 모른 채 직업병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 업무상 질병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밝혔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은 다양한 화학물질과 중금속 등에 노출되는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성 질병의 문제에 대해 불승인을 남발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만을 취해왔다. 이러한 공단의 협소한 직업병 인정기준에 대해 지속적인 비판을 받아왔지만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최근 법원을 통해 직업성 질병임을 인정하는 판결들이 나오고 있는 점에 비춰 볼 때, 협소한 의학적 증거에만 의존한 판단이 아니라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법리에 충실하게 제반 사정을 종합 판단함으로 산재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희귀질환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산재보상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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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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