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 인신매매보고서 대한민국 최상단계 1등급
환경인증, 국제노동기준 부합 수산물 인증 개발 시급
[환경데일리 김영민 기자] 2015년 미 국무부의 인신매매보고서(Trafficking in Persons Report: TIP)는 대한민국을 최상단계인 1등급으로 분류했으나, 이와 동시에 "한국은 강제노동과 성매매에 관한한, 성인남녀 및 아동 피해자들의 근원국(source)이자, 경유국(transit)이며, 최종목적지 국가(destination country)다"라고 지적했다. 겉과 속이 다른 나라라는 지적이다.
이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문제삼는 대목이었다. 2014년 말 기준으로, 총 1만1464명의 외국인이 한국 원양어선과 연근해어선에서 고용된 것으로 확인됐으며 전체 선원 대비 외국인 선원의 비중은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처우는 국제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수산업 종사 이주노동자들은 종종 인종차별적 언어폭력과 신체폭력에 노출되고 있으며, 대다수는 근로기준법이나 고용허가제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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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데일리 |
해양수산부가 발간한 2014년 선원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4년도 한국인 선원의 월 평균 임금은 433만5000원이었던 것에 비해, 외국인 선원의 경우 이의 3분의 1 수준인 111만2000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단순히 임금의 격차만은 아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연근해어업 선원 중 이주노동자를 상대로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이들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부실한지 여실히 드러난다.
다음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한국의 연근해어선과 원양어선에서는 심각한 폭행, 살인적인 노동강도, 사기 계약 등을 포함한 인권문제와, 해상안전에 대한 미흡한 감시로 인한 사건사고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지난 몇년 간 국내 원양어선에서 일어난 인권유린이 해외 언론을 통해 폭로되면서, 한국은 인권 후진국이란 오명을 썼다. 다음은 국내외 언론을 오르내렸던 주요 사건들에 관한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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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데일리 |
오양 70호, 침몰과 함께 밝혀진 가혹한 선원들의 생활을 소개한다.
2010년 8월, 사조그룹 트롤선 오양 70호가 뉴질랜드 해역에서 침몰하면서 3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된 사건. 살아남은 선원들의 증언에 의하면 오양 70호의 침몰은 무리한 조업의 결과였다. 사고가 난 정황과 추가적인 신체적, 정신적 학대에 대한 진술이 이어졌다.
이외에도 밤낮없는 조업, 잡은 물고기를 식량으로 대체하는 파행과 폭언, 구타가 난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침몰 당시, 선상에는 사고에 관한 알람이나 탈출안내가 전무했다.오양 70호의 침몰은 원양어선의 조악한 환경과 인권유린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도화선이 됐다.
소진호 사건 부산해경 관계자는 "외국인 선원들에 대한 한국인 간부선원들의 인명 경시 풍조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고 혀를 찼다.
그뿐인가. 501 오룡호, 유령선장과 노후선박이 생명을 앗아간 가슴 아픈 사건도 있었다.
2014년 12월,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조업 중이던 사조그룹 배 오룡 501호가 기상악화에도 불구하고 계속 조업을 강행 60명의 선원 중 27명이 사망하고 26명 실종 된 사건. 선상에 마땅히 있어야 할 선장은 없었고 항해사만 있었으며, 배에 바닷물이 차오르는 등의 긴급상황이 있었으나 대응할 수 있는 숙련된 직원은 전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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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데일리 |
이 사건은 원양업계에서 불법 서류조작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줬고, 또한 이 사건을 통해 20년이 넘은 노후 선박이 90%에 달하는 한국에서 안전점검 절차가 매우 부실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오양 75호에서 일했던 인도네시아 출신 노동자 수기토씨는 인권위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이런 것(폭력, 성추행, 거친 언어)이 한국의 문화인 걸까?'라고 생각했다."고 치를 떨었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처럼 국내 수산업계에서 벌어진 노동착취는 지속적으로 국제적인 이슈가 됐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국제노동기구(ILO)의 8개 핵심 협약 중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제 29호)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이 협약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조처를 취할 수 있는 국제 규정으로, 수산업계에 만연한 노동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한국이 반드시 가입할 필요가 있는 협약이다.
선원에 대한 노동착취를 근절할 유일한 방법은 바로 수산업 공급망 중심의 통합적 접근이다. 최종시장(end market)을 포함, 전체 생산망을 아우르는 수산업계가 정부와 함께 어선 위 노동착취 및 해상감시의 미흡과 같은 문제의 개선을 위해, 이미 마련된 기존의 조치를 준수하고 국제 노동기준을 개선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기준 하향화를 야기하는 근본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도 필요하다. 이는 선박의 과잉 어획능력 근절, 어족자원 개체수 회복, 수산물 가격을 생산원가 이하 수준으로 떨어지게 만드는 시장경쟁 방지 등,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정책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어선을 운영하는 기업과 개인은 국내 및 국제 기준에 따라 안전하고 건전한 근로환경을 조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어선의 소유주와 선장은 국제노동협약 가입국에 등록된 자이거나 가입국 국민이다. 따라서 설령 해당 어선이 편의치적제도에 따라 타국의 어선으로 등록된 선박이라 할지라도 관련 국내규정은 준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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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그린피스 © 환경데일리 |
협약 가입국의 집행기관들은 노동과 안전에 대한 기준과 법령을 편의치적제도를 떠나 보다 엄격히 강제해야 하며,각국 정부는 불법어업 억제와 근절에 필요한 조치의 시행을 위해 힘써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어선의 조업활동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통제와 관리는 물론이고, 궁극적으로는 선원의 근로환경 개선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럼 해결방안이 되는 수산업계를 위한 지침이 없는 게 아니다.
모든 자연산 수산물과 양식 수산물은 지속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책임있는 수산업체와 양식업체를 통해서만 조달받는다. 잡어(trash catch)를 원료로 해서 만든 사료를 제외한 모든 양식업 사료의 유통에 있어서도 이러한 규칙을 준수해야 한다.
양식사료를 포함, 모든 자연산 수산물과 양식 수산물은 어선에서부터 판매처에 이르기까지 100% 추적이 가능해야 한다. 전체 공급망에 대한 무작위 감사 및 정기 감사가 업체의 조달정책에 포함돼야 한다.
불법어업 관련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선박이나 기업으로부터 수산물을 조달받지 않는다. (그린피스는 시장주체들이 수산물 조달 계약 체결시 참고할 수 있는 불법어업 선박 블랙리스트와 권고사항을 마련했다).
해상전재 행위를 한 선박의 어획물을 조달받지 않는다.
수산물 어획 및 거래와 관련 불법행위로 제재조치를 받은 기업의 수산물을 조달받지 않는다. 노동법에 반하는 착취행위에 연루된 기업의 수산물을 조달받지 않는다.
국제 노동기준(ILO)의 핵심협약, 국제노동기구 어선원노동협약 2007, 국제노동구기구 해사노동협약 등)을 준수하는 선박, 기업, 통조림 제조사, 수산물 가공사의 제품만을 조달받는다
업계는 이러한 지침을 준수하는 동시에, 또한 현행 수산물 인증 프로그램이 노동착취 문제에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제품은 환경의 지속가능성 기준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합의된 노동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따라서 환경인증뿐 아니라, 국제 노동기준에 부합하는 수산물 인증 프로그램의 개발에 앞장서야 한다.
정부를 위한 지침 수산물을 어획하는 선원뿐 아니라, 가공 및 유통 종사자 모두에 대해 ILO의 규정을 포함한 핵심 국제 노동협약을 비준하고, 이를 준수해야 한다.
적절한 인적, 재정적 자원의 배정으로 선상 노동환경을 감시하고, 노동착취와 인신매매에 연루된 자국민과 공무원을 포함 모든 노동착취 가해자에 대한 기소와 제재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선원의 승하선 데이터를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규칙을 시행하고, 이를 초국가적으로 확대하기 위해 국제적인 조율을 재고해야 한다.
유엔 공해어업협정(United Nations Fish Stocks Agreement),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불법어업(IUU) 및 어선 어획능력에 대한 국제행동계획, FAO 이행협정, FAO 항만국조치협정 등, 불법어업 퇴치를 위한 주요 협약에 비준하고 협약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
지역수산관리기구(Regional Fisheries Management Organisation)와 국가적 방안을 통해 기국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국가(불이행 기국)에 대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국가 및 지역 차원에서 해상전재를 금지해야 한다. 유엔 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제 94조를 준수해야 한다. 어업허가를 받은 모든 어선과 블랙리스트에 오른 선박에 대해 각국 정부와 수산업 관리기구에서 공유할 수 있는 국제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린피스는 수산업은 특히 개도국의 경제에 중요한 산업분야이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개도국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조업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하며, 동시에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생산된 수산물의 시장 유통을 전면 금지시켜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