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에너지 주권이 흔들린다"… 그린피스, EU 본부 '트럼프 타워' 변신시킨 까닭은

고용철 기자 / 2026-03-20 02:41:38
- 미 에너지 의존도 40% 상향 전망에 "화석연료 예속" 경고
- 환경 규제 완화 움직임 비판… '녹색 사회적 방패' 구축 촉구


(C) NTN24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본부 건물이 순식간에 '트럼프 타워'로 탈바꿈했다. 2026년 3월 19일 오전,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Greenpeace)가 감행한 기습 시위는 단순한 시각적 퍼포먼스를 넘어, 현재 유럽이 직면한 정치·경제·에너지적 위기를 관통하는 통렬한 경고장을 날렸다.

"트럼프 의제에 저항하라"… 브뤼셀 심장부에서의 외침
그린피스 활동가들은 이날 EU 집행위원회 건물 외벽에 "트럼프의 의제에 저항하라(RESIST TRUMP’S AGENDA)"라는 대형 문구를 투사했다. 이는 최근 유럽연합이 취하고 있는 친(親) 미국적 에너지 행보와 환경 규제 후퇴 움직임에 대한 정면 비판이다.

이번 시위의 핵심은 유럽의 '에너지 주권'이다. 그린피스는 유럽이 러시아산 천연가스로부터 벗어나려는 과정에서 또 다른 거대 권력인 미국에 구조적으로 예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경제·에너지 정책이 유럽의 정책 결정 과정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현 상황을 '유럽의 미국화'로 규정했다.

7,500억 달러의 굴레: 가속화되는 미국 의존도
그린피스가 제시한 통계는 가히 충격적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은 새로운 무역 협정의 틀 안에서 2028년까지 미국으로부터 총 7,500억 달러(한화 약 1,000조 원) 규모의 에너지를 수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주로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에 집중되어 있다.

통계적 수치는 이미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2025년 기준 EU의 전체 가스 임포트 중 미국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27%였으나,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2030년에는 40%까지 치솟을 것으로 보인다. 불과 10년도 안 되는 기간에 유럽 에너지 공급의 절반 가까이를 단일 국가에 의존하게 되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적 의존은 세 가지 차원의 리스크를 수반한다. 첫째,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른 외교적 취약성 증대다. 둘째, 글로벌 가격 변동성에 대한 노출이며, 셋째는 유럽 스스로 에너지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의 상실이다.

위기를 빌미로 후퇴하는 환경 규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에너지 수급을 명분으로 그동안 유럽이 공들여 쌓아온 환경 기준들이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린피스는 EU 당국이 소위 '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하에 핵심 환경 규제들을 완화하려 한다고 강력히 규탄했다.

현재 도마 위에 오른 규제들은 다음과 같다.

산림파괴 방지 규정: 공급망 내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한 엄격한 잣대가 느슨해질 위기다.
메탄 배출 통제: 화석연료 채굴 및 운송 과정에서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후퇴하고 있다.

화학물질 및 보건 규제: 공중보건과 직결된 화학물질 관리 기준이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빅테크 과세 및 규제: 미국 측의 압력으로 인해 거대 IT 기업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린피스는 이를 두고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위해 유럽의 장기적인 미래와 시민의 안전을 저당 잡히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대안으로서의 '녹색 사회적 방패(Green Social Shield)'
그린피스는 단순히 비판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이른바 '녹색 사회적 방패' 구축이다. 이는 화석연료 중심의 경제 구조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포괄적 정책 패키지다.

이 제안은 ▲가계 에너지 비용의 근본적 절감 ▲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 ▲지속 가능한 식량 체계 구축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주거 및 교통 인프라 확충을 골자로 한다. 즉, 에너지 문제를 단순히 공급처 다변화로 풀 것이 아니라, 수요 자체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여 외부 의존도를 0으로 수렴하게 하자는 논리다.

결론: 에너지는 곧 권력이다
이번 시위는 에너지 문제가 더 이상 기술적인 영역이 아닌 '지정학적 권력 투쟁'의 산물임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중동의 긴장 고조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속에서 유럽은 성급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그린피스의 경고처럼, 지금 유럽이 선택하는 화석연료 기반의 '편리한 결탁'은 향후 수십 년간 유럽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진정한 의미의 에너지 독립은 대서양 건너편의 유정(油井)이 아니라, 유럽 대륙 내부의 바람과 햇빛,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환경 규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이번 '트럼프 타워' 퍼포먼스에 담긴 묵직한 메시지를 정책에 어떻게 반영할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환경데일리 = 고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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